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거품을 빼야 살아남는다/한국경제 거품지수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거품을 빼야 살아남는다/한국경제 거품지수는

입력
1997.12.03 00:00
0 0

◎말로만 외친 ‘작은정부’ 남의 돈으로 잔치를 벌인 기업/흥청망청 쓰기 바빴던 일부 소비층에 의해 (주)대한민국이 부도위기다/그러나 경제난국 책임에 예외는 없다/승용차 운행거리·외식비 비중은 일본의 2∼2.5배,에너지소비 미의 2배…/당신이 줄여야할 몫은 없는가연간 승용차 평균 운행거리 일본의 2배, 가구 소득 중 외식비 비중 일본의 2.5배, 매출액 대비 물류비용 미국의 2배….

거품이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퍼져 있던 거품은 우리 경제를 면역력은 없이 몸집만 비대한 허약 체질로 만들어 버렸다. 국민소득 1만 달러 돌파도 결국 내실없는 거품에 불과했다. 단 한차례의 「외환몸살」에 몸져 누울 수 밖에 없을 만큼.

우리 사회 도처에 만연해 있는 거품들을 걷어내지 않고서는 더 이상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자각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A그룹 신모(33) 대리. 서울 서초구에 사는 그는 요즘 승용차 대신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있다. 한 달에 절약되는 액수는 기름값과 세차비 12만원, 주차요금 5만원, 혼잡통행료 10만원. 지하철 요금 2만원 가량을 빼면 25만원 정도가 절약된다. 주말에 거르지 않던 외식과 영화관람 등 나들이도 중단하기로 아내와 합의했다. 여기서 5만원 절약. 이발도 시내의 반값인 동네 이발소에서 한다. 아내도 명동의 단골 미장원 발길을 끊었다. 매년 해왔던 대학 동창들과의 망년회는 이미 한 동창생의 이사 집들이로 대신했다. 『생활비의 20% 정도는 충분히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다보면 가끔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큰 불편은 없다. 퇴근 후 술자리 모임이 훨씬 줄어들 만큼 직장 동료들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분위기다』

명동에 있는 B제화 고객서비스센터 직원들은 요즘들어 갑자기 늘어난 구두수선 의뢰 때문에 바빠졌다. 『수선의뢰가 20% 정도 늘었다. 예전같으면 새구두로 교체했을 만큼 낡은 구두도 상당히 많다』는 게 담당 직원의 설명. 실밥이 터진 남편 구두를 맡기러 온 주부 장경은(34·서울 면목동)씨. 『동네 이웃끼리 모이면 「우리같은 서민이야 더 줄이면 허리 끊어진다」는 농담도 오고 가지만 소비를 더 줄여야 한다는 데는 모두들 동감한다. 딸아이 학원을 세곳에서 한곳으로 줄이고, 좀 멀더라도 꼭 대형 할인매장을 이용하는 식으로 씀씀이를 줄여가고 있다』

가정 뿐이 아니다. 재벌 그룹을 비롯하여 대다수 중견기업들도 일제히 군살빼기에 돌입했다. 해외출장 자제, 사무용품 아끼기, 임원용 차량 자가운전 등은 기본이고, 가장 강력한 구조조정수단인 인원감축계획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삼성그룹은 조직과 투자규모를 30% 축소하는 대대적인 감량경영계획을 지난달 26일 발표했다. 현대그룹은 전체 임원의 25%를 줄이는 한편, 당초 9조원으로 책정했던 투자규모도 원점에서부터 다시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무려 전체 임직원의 절반을 감축하기로 한 한라중공업, 내년도 신규사업 투자를 전면 중단하기로 한 두산그룹 등 그동안 누적된 거품을 빼기 위한 구조조정 노력이 재계 전체로 번져가고 있다. S그룹 임원은 『이제 감량경영을 통한 기업구조조정은 선택이 아니라 「살아남느냐 쓰러지느냐」는 생존의 문제』라며 『나 자신 일차 감원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각오까지 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들도 과소비 추방과 경제살리기를 위한 각종 캠페인과 프로그램 개발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40여 민간단체로 구성된 과소비추방범국민운동본부의 「외화절약 실천 범국민운동」을 필두로 중고 가전제품 등을 무료로 나눠주는 YMCA의 「녹색가게 운동」, 새마을운동협의회의 「경제난 극복을 위한 범국민운동」 등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전개해 온 새마을운동협의회의 신국채보상운동은 당초 목표액인 3조원을 일찌감치 돌파, 저축계약고가 5조1,250억원을 돌파했다. 과소비추방본부의 경제살리기 서명운동 참가자 수도 11월29일 현재 1만2,000여명에 달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일부 기업과 부유층이 최근 경제위기를 아랑곳 하지 않는 행태를 일삼고 있어 대조적이다. 일부 대기업은 금융시장이 마비되는 지경에서도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이자놀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재벌그룹들은 대대적인 감원을 시도하면서도 보유 부동산 매각이나 업종 정리 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은 밝히지 않아 노동자들에게만 고통을 떠넘기려 한다는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통상산업부 「주요 소비재 수입현황」에 따르면, 전체 외국산 소비재 수입액은 올들어 지금까지 3.8% 줄었으나 위스키, 가구, 화장품 등 일부 품목의 수입액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이를 반영하듯 고급 모피, 외국산 고가 브랜드 전문점 등에는 부유층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남의 J모피 직매장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혼수·예단용으로 고급 모피의류를 찾는 고객들이 많다. 지난해에 비해 매출액도 거의 변동이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시중 백화점들의 「샤넬」모시기 경쟁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문광승 사무국장.

『이번에도 제대로 병을 다스리지 못하면 사망선고에 이를 수도 있을 만큼 우리 경제는 위독하다. 따라서 책임과 의무에 관한 한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오늘날의 위기는 정책적 오류를 거듭한 정부와 남의 돈으로 잔치를 벌여 온 기업의 책임이 크다. 「네 거품부터 빼라」는 식의 태도로는 국민들의 광범위한 동참을 이끌어낼 수 없다. 국민들도 이번 위기를 계기로 좀더 합리적인 소비주체로 거듭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황동일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