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끝에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간의 협상이 사실상 끝났다. 곧 구제금융이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구제금융의 조건은 가혹하고 냉정하다. 구제금융의 조건을 이행한다는 것은 한국경제가 밑바닥부터 경제운영의 틀을 바꾸고 경제주체들의 의식의 변혁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우리 경제가 「지옥훈련」을 받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거나 무너지면 우리 경제는 영영 주체성을 상실한 채 사실상 식민지로 전락한다. 우리에게 21세기의 희망은 사라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막연한 낙관론에 사로잡혀 있다. 멕시코의 위기극복을 얘기하며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근거없는 낙관이 결국 오늘의 위기를 불러왔듯이 우리 경제의 진짜 위기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우리는 이제부터 벌어질 사태의 방향이나 규모, 심각성을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더 더욱 우리는 이 엄청난 국난의 와중에서도 따라야 할 향도마저 잃어버린 상태다. 상황을 장악하고 총체적 국력결집을 통해 대처해 나가야 할 지도자의 리더십은 공백상태를 빚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국론마저 찢긴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간 IMF의 자금이 제공되는 순간부터 우리 경제는 더욱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지 모른다. 하루 빨리 정치권이 정치적 리더십을 회복하고 정부가 사태의 장악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위기관리체제가 구축돼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제자리를 찾아 국정을 장악해야 한다. 싫든 좋든 지금은 대통령, 나아가 정부의 위기관리 리더십이 절대로 필요한 시기이다. 위기관리 리더십의 회복을 위해선 대선에 출마한 세 후보의 절대적 협조가 필요하다. 세 후보는 정치적 이해를 떠나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허심탄회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난국의 와중에서 국정마저 「돛대도 삿대도 없이」 흘러간다면 앞으로 대선까지 단 몇주안에 야기될 경제적 혼란은 그나마 만신창이 경제가 더욱 엉망이 될 위험이 크다.그리고 누가 대선에서 당선되든 대선이후 정권이양까지의 국정내용에 따라 구제금융경제의 틀과 방향이 규정될 것이다.
IMF의 구제금융은 한국경제에 대한 공식적인 법정관리의 시작이다. 창구는 IMF이지만 사실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의 한국경제에 대한 수렴청정이다. 거시지표상의 경제운용목표는 물론 금융산업개편, 재벌경영체제, 자본시장개방, 세율체계 등 그들의 간섭과 요구는 미치지 않는 부문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미국 등 선진국이 그동안 한국에 요구하거나 강요했던 모든 분야의 시장개방과 국내 산업정책의 조정이 그들의 자의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노렸던 목표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경제주체 누구인들 혜택을 볼 수는 없다.
절망을 부추기자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우리에게 급한 것은 IMF의 굴레로부터 신속히 벗어 나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착수하는 일이다. 그러자면 한시라도 빨리 흐트러진 국정체계가 위기관리체제로 전환돼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나락으로 떨어진 정부와 대통령의 리더십을 밀어주어야 한다. 책임을 따지기엔 우리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 캉드쉬 IMF총재가 『한국경제는 1년반 정도의 저성장을 거치면 회복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 말을 믿을 수는 없다. 단지 한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뜻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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