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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F”/조철환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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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F”/조철환 경제부 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7.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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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새벽 0시30분, 서울 힐튼호텔 지하 1층 국화룸. 임창렬 경제부총리가 국제통화기금(IMF)협의단과 「굴욕적 협상」을 마치고 모습을 나타냈다. 『최종 합의에 이르렀나요』 『자금지원은 언제부터 시작되나요』 전날 밤 10시부터 문앞에 쪼그리고 앉아 협상이 끝나길 기다리던 20여명의 기자들이 질문을 퍼부었다.바로 이때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프라노 소리가 끼어들었다. 『얘, 탤런트가 아니쟎아. 별거 아닌데 다시 들어가자』 이제 갓 스무살이 넘어보일만큼 앳된 용모지만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였다.

한눈에 봐도 「물좋기로」소문난 이 호텔 「파라오」나이트클럽에 놀러온 「파라오족」이 분명했다. 카메라 조명을 들이대며 기자들이 몰려들자 박중훈 같은 인기 연예인일 것이라 짐작하고 몰려온 듯 했다.

『우리 손님이지만 한심한 애들입니다. 「경제위기」라는 말 자체가 머리속에 들어있지 않은 애들입니다』 로보캅처럼 이어폰을 낀채 나이트클럽을 경호하던 같은 또래 경비원이 꼬집었다.

파라오(Paraoh)는 고대이집트를 통치했던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일반백성들과 똑같은 사람이면서도 『오류가 없는 신』이라고 우기며 백성들을 통치했다. 수많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피와 땀을 짜내 자신의 무덤인 피라밋을 만들도록 강요한 것도 이들이다.

그리고 5,000여년이 지난 한국에 「파라오족」이 출현한 것이다. 하지만 이시대 「파라오족」이 비단 나이트클럽에 놀러온 철없는 젊은이들 뿐일까.

언론의 잇딴 경고를 무시한채 「경제의 펀다멘탈(기초)은 좋다」고 우기다 비참한 협상에 나선 재경원 고위공무원. 「우리는 한가족」이라며 종업원에게 무한충성을 요구하다 불황의 책임을 종업원에게 돌리며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댄 재벌들. 이들 모두 한국경제가 「나는 F학점(I am F)」이라고 선언한 IMF시대의 문을 활짝 열도록 일조한 또다른 「파라오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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