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까지 「기업사냥」 표적권에/“일정 구체화” 재협상 미 입김 작용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의 합의결과는 정부가 IMF의 과도한 요구까지 대부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무조건 항복」이라고 할 수 있다.
경상수지개선, 흑자재정(예산감축), 긴축적 통화관리, 물가안정, 저성장 등 통상적인 요구사항은 물론이고 ▲부실금융사 조기정리 ▲자본시장 전면개방 ▲기업 및 금융 투명성 제고 ▲수입선다변화제도 폐지 ▲재벌의 차입경영 해소등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일본이 평소 요구하던 주문이 무차별 수용됐다.
특히 정부는 IMF측이 재협상까지 요구하며 강경하게 나왔던 부실 종합금융사 폐쇄 등 금융산업구조조정과 관련, 12개 종금사를 즉각 폐쇄하라는 IMF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해 부실종금사를 무더기로 조기 정리하기로 했다. 다만 은행의 경우 2∼3개를 바로 정리하라는 IMF의 주장을 정부가 재정지원을 토대로 강력한 인수·합병(M&A)정책을 추진한다는 선에서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종금사 12개사 폐쇄 등에 대해 난색을 표시하며 「조건부 항복」을 시도했으나 IMF측이 막무가내로 나오는 바람에 좌절됐다. 긴급자금을 하루라도 더 빨리, 더 많이 지원받기 위해 IMF에 무릎을 꿇고 경제주권을 고스란히 넘긴 것이다. 외환사정이 벼랑끝에 몰리는 등 국가부도가 코앞에 다가온 상황이어서 협상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또 잠정타결이 완전타결로 바로 연결되지 못한채 재협상에 들어가게 된 이면에는 「대수술」의 내용과 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라는 미국의 입김이 배후에서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IMF의 신탁통치」는 당초 예상보다 휠씬 강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합의결과는 한국경제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한국경제개조작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저성장 고실업 고세금」이라는 엄청난 「IMF한파」에 떨어야 하고, 금융 기업 정부 가계 역시 미증유의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3%내외의 초저성장으로 실업대란이 발생, 실업자는 최소 1백만명을 상회하는 반면 「금융수술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각종 세금의 세율이 오르는 후유증이 한꺼번에 겹쳐 민심이 극도로 흉흉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IMF측의 권고대로 통화긴축과 실세금리가 연 18∼20%에 달하는 고금리정책이 펼쳐지면서 시중자금은 고갈되는 반면 자본자유화에다 고금리정책이란 당근으로 인해 외국자본은 대거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일반 기업은 물론 금융기관과 공기업까지 외국인의 「기업사냥」표적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기업어음(CP)은 단기채권시장까지 개방되면서 국내·외 엄청난 금리차를 노린 핫머니가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무역자유화로 수입선다변화제도 등 국내산업을 보호해 주던 각종 장치가 일거에 무력화돼 산업기반이 약화되고 그동안 수입선다변화제도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일본의 제품은 호랑이에 날개를 다는 격이 될 수 있다. 또한 차입경영 해소를 위해 지급보증에 급격한 제약이 가해질 경우 재벌은 「명치」를 맞은 것처럼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서방세계에서 한국의 과투자로 꼽고 있는 산업분야가 된서리를 맞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대수술이 고통에 걸맞는 성과를 올릴 것이냐는 부분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원조건이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키워줄 수 있지만 이에 앞서 성장기반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고도성장이 체질화한 우리에게 필요한 처방은 긴축보다는 오히려 구조개혁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데도 IMF측은 긴축과 구조개혁을 동시에 강행하기로 하는 등 경제기반이 우리보다 취약하고 금융위기의 원인도 달랐던 멕시코와 비슷한 처방을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김경철 기자>김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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