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라 형편은 실로 위중한 국난의 상황이다. 경제위기로 한숨과 불안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때 청와대와 정치권이 책임떠넘기기와 경제위기 극복책을 놓고 한심한 공방만을 벌이고 있다. 경제파탄에 대해 누구 하나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 없이 「네탓이오」만을 연발하고 있고 금융실명제의 유보를 포함한 대통령의 긴급경제명령발동요구에 대해 청와대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환자(경제)는 죽어 가는데 의사들끼리 책임과 처방을 놓고 싸움만 하는 꼴이다. 언제까지 이럴 것인가.이번 대통령선거의 최대 이슈는 뭐니뭐니 해도 경제의 회생과 안정이다. 경제살리기는 국민과 기업인들에게는 생존에 관계되는 절체절명의 과제다. 따라서 각 당과 후보들이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불쾌한 일이지만 제각기 응급대책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두고 청와대가 회생처방을 제대로 검토도 않은 채 표만을 의식한 인기술책이라고 단정, 일언지하에 외면하는 자세는 온당치 못하다.
우선 경제위기의 책임은 전적으로 김영삼 대통령과 정부에 있다. 그동안 국제화·세계화를 주창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의 가입으로 선진국자격증을 땄다고 자랑한 것이 언제인데 경제파탄과 함께 외화구걸 국가로 전락시킨 책임은 바로 무능과 무책임이 초래한 결과다.
정치권 역시 집권당이 아니라고 지금은 정부와 무관하다 해서 책임이 면제될 수는 없다. 모든 후보와 정당들은 일찍이 국회에서 금융을 포함한 경제구조를 전면 개혁하도록 촉구하고 입법활동을 벌였어야 했다. 사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각당의 처방안은 별 차이가 없다. 실명제의 유보 내지 보완, 기업대출자금상환 6개월∼1년유예, 무기명 장기산업채권 발행허용, 새해 예산 10% 삭감, 정부기구축소 등 거의가 대동소이하다. 이는 국민과 기업의 요구이다. 이를 대통령 긴급경제명령으로 발동을 요구한데 대해 청와대가 발끈한 듯하다. 국회가 휴회중이 아니어서 헌법상 긴급명령발동을 할 수 없고 또 실명제 대체법안 등이 계류중인 만큼 국회에서 처리하면 된다는 얘기는 일리가 있다. 국민회의 등서 청문회와 탄핵 등을 거론한 데 대해 반발한 인상이 짙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한가한 때가 아니다. 나라가 표류하는 정도가 아니라 배(나라경제)가 침수되는 중대한 위기에 직면했다. 때문에 김대통령이 사태수습에 결연히 나서야 한다. 긴급명령이건 비상조치이건 어떤 방식으로든 각후보·각당의 정책 대안들을 최대로 수용, 종합적인 경제살리기 비상대책을 제시하고 직접 진두지휘해야 한다.
지금 국제통화기금(IMF)대표단은 후보들에게 차관상환보장 각서를 요구하고 있고 자금도 선거가 끝난 후에나 공급하려는 자세로 정부를 불신하고 있다. 따라서 각당과 후보들은 김대통령이 새 처방을 들고 수습에 나설 때 적극 협력하고 지원해서 안팎으로 신뢰감을 구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기회는 한번 뿐이다. 김대통령의 대오각성과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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