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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읽기의 즐거움/옛사람들도 이렇게 지혜로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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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읽기의 즐거움/옛사람들도 이렇게 지혜로웠구나

입력
1997.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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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이규보·이이·정약용 등 대가들의 짧은 명문 47편 수록/논술고사용으로도 읽어볼만도둑 이야기 하나. 어느 도둑이 아들에게 자기 솜씨를 모두 가르쳐주었다. 아들은 자기가 아비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 「솜씨는 아버지에 비해 손색이 없고 억센 힘은 오히려 나으니 이대로 나간다면 무엇은 못하겠습니까?」했다. 그러자 아비도둑은 「아직 멀었다. 지혜란 배워서 이르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어서 스스로 터득함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고 했다. 다음날 밤 아비도둑은 아들을 데리고 어느 부잣집에 들어갔다. 아들을 보물창고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는 아들이 보물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을 때 밖에서 문을 닫고 자물쇠를 건 다음 자물통을 흔들었다. 이때부터 아들은 창고에서 빠져 나가기 위해 온갖 꾀를 다 내야 했다. 먼저 손톱으로 박박 쥐가 문짝 긁는 소리를 냈다. 주인이 쥐를 쫓으려고 들어오는 순간 쏜살같이 빠져 달아났다. 이어 식구들이 모두 쫓아나오자 큰 돌을 연못으로 던졌다. 뒤쫓던 사람들이 「도둑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하고는 못 가에 빙 둘러서서 찾는 사이 아들도둑은 빠져나갔다.

집으로 돌아와 원망하는 아들에게 아비도둑은 「이제 너는 천하의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사람의 기술이란 남에게서 배운 것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그 응용이 무궁한 법이다. 너를 궁지로 몬 것은 너를 안전하게 하자는 것이고 너를 위험에 빠뜨린 것은 너를 건져주기 위한 것이다」고 답했다.

이는 강희맹(1424∼1483)이 아들에게 자득의 묘를 가르치기 위해 쓴 것이다. 민족문화추진회가 편찬한 「고전 읽기의 즐거움―한국고전 산책」은 짧은 글 속에 삶의 지혜가 번뜩이는 우리 고전의 명문 47편을 싣고 있다. 박지원 유몽인 이규보 신광한 이상적 이이 이익 정약용 정철 등 대가들이 쓴 작품 중에서 재미있고 쉽지만 자신과 사회에 대해 진지함을 놓치지 않는, 『아, 옛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했구나』할 만한 짤막한 글을 주로 뽑았다.

최근 서울의 주요 12개 대학 교무처장단이 논술과외가 극성을 부리는 폐해를 막기 위해 이번 대입 논술고사에서 「고전 위주의 출제」방침을 재확인했다. 논술고사를 준비하는 수험생도 읽어볼 만하다. 맨뒤에 붙은 필자 소개를 통해 옛사람들의 인생역정을 엿보는 재미도 크다. 솔 발행, 6,000원.<이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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