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협조융자든 증자대금이든 무차별 상환요구에 줄줄이 도산『최근 4개월동안 종금사들이 무려 80억원의 자금을 거둬갔습니다. 무차별적으로 돈을 빼내 갔지요. 최근엔 은행에 돌아온 어음 1억8,500만원을 결제하기 위해 대리점에서 물품대금으로 받은 가계수표를 제시했지만 현금 아니면 안받겠다고 거절당했습니다. 평소 가계수표를 받던 은행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니 부도를 안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올들어 49억3,000만원의 매출과 5,000만원의 순이익을 내고도 지난 27일 부도를 맞은 화장품업체 에바스 관계자는 흑자부도에 이르게 된 기막힌 사연을 이같이 털어놨다.
에바스는 지난 10월 7억8,000여만원, 9월 5억원 등 올들어 월평균 3억∼4억원의 흑자를 내왔으나 종금사들의 무차별적인 자금회수에 견디다 못해 부도를 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최근 종금사에 상환한 80억원중 20억원만 외부에서 차입하고 60억원은 수익금으로 충당할 정도로 경영상태가 좋았다』며 『적자를 내고 부실경영을 했다면 이렇게 억울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최근 부도를 내거나 화의를 신청한 기업들 가운데는 숨돌릴 틈도 주지않는 금융권의 자금 상환요구에 어이없게 쓰러진 경우가 허다하다.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자마자 다 뽑아가고, 간신히 얻은 은행의 협조융자도 종금사가 모두 거둬가는데다 대형 거래선마저도 채권확보에 혈안이 돼있으니 아무리 경영을 잘 해도 돈의 씨가 마를 수 밖에 없다는게 이들 업체의 하소연이다.
최근 K사는 긴급한 영업자금 마련을 위해 90억원의 증자를 실시했는데, 증자가 끝나자마자 이중 30억원을 종금사들이 회수해가겠다고 한꺼번에 덤벼드는 바람에 부도직전까지 갔었다. 애걸복걸해 간신히 증자대금의 「증발」을 막기는 했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하늘이 노랗다는게 K사 자금담당자의 말이다. 종금사 여신이 남아있는한 증자대금이든 협조융자든 모두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게 업계의 공통된 생각이다.
「쟌피엘」브랜드로 유명한 상장 의류업체 부흥도 올해 전년대비 두자릿수 성장을 하는 등 승승장구하다 갑작스런 자금회수 압박에 견디다 못해 지난 26일 부도를 냈다.
이달초 화의를 신청한 해태그룹도 지난 8월초부터 매일 200억∼500억원의 자금 상환요구에 시달려왔다. 9월초 종금사 사장들이 해태에 대한 자금회수 자제를 결의한뒤 한숨을 돌렸으나 10월초 은행권에서 540여억원을 지원하자 다시 종금사들이 마구잡이로 여신을 회수, 자금압박을 견디다 못해 화의를 신청하게 됐다. 종금사들은 이달 중순께 다시 해태에 1,500억원을 지원키로 했고 은행도 400여억원을 제공키로 결정, 해태는 조만간 화의신청을 철회할 방침이다. 금융권이 마음만 먹으면 어느 기업이든 죽이고 살릴 수 있다는 최근 상황이 여실히 드러난 경우다. 해태는 부채비율이 650%에 달하기는 하지만 화의나 법정관리를 신청한 7개사 대부분이 흑자를 내고 있다. 800억원의 협조융자를 받게 된 신호그룹도 지난 7월 신탄진공장 완공후 은행의 지원이 끊긴데다 증권사들의 수백억원대 회사채 상환 압박, 은행의 수출 신용장개설 거부 및 기한부 수출환어음(DA) 할인중단 등으로 심각한 자금난을 겪어왔다고 털어놨다.<남대희 기자>남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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