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전에 없이 잦다. 입동이 지났는데도 하루 걸러 한번씩 비가 오니 여름인지 겨울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다. 지금까지 내린 비도 기상관측 이래 11월 강수량으로는 최고치인데, 주말부터 일요일까지 10∼70㎜의 비가 더 오겠다는 예보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11월 들어 강수일수가 6∼11일이나 된다. 강수량도 200㎜가 넘는 곳이 많아 평년 강수량(37∼78㎜)의 몇배를 기록했다.기상청 당국은 이런 기상이변이 엘니뇨(El Nino)현상의 영향 때문임이 분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남아메리카 페루 앞바다의 해수온도 상승으로 인한 이번 엘니뇨는 지난 8월 세계 기상학자들에 의해 사상 최대규모로 예측됐다. 그 결과 아시아의 곡물생산량이 격감하고 남미지역의 어획고가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무 대책없이 강건너 불구경 처럼 태연하기만 했다.
인도네시아 산림화재로 아시아가 떠들썩할 때도 뒷짐만 지고 있다가 11월 들어 겨울장마가 나고 폭풍으로 인명피해가 난 뒤에야 부랴부랴 관계기관대책회의란 것이 열렸다. 과기처 내무부 농림부 등의 관계자들과 기상학자들이 참석한 이 회의도 엘니뇨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연구하는데 서로 협조하자는 수준에 머물렀다.
기상이 현대인의 생활, 특히 경제적으로 얼마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는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가뭄과 홍수, 기상이변과 해수온도 상승 등이 농업과 어업같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 크다. 특정지역 특정작물의 흉풍에 의한 곡물 청과물 수산물 등의 국제시장 변화요인도 기상조건에 좌우된다. 실제로 시카고의 곡물거래소 중개인들은 벌써부터 엘니뇨 덕을 볼 일이 즐겁다는 표정이다.
선진국들이 일찍부터 기상관측과 기후관리에 많은 예산을 쏟아넣은 것도 경제적 이득을 위한 것이다. 미국은 78년 기후법까지 제정해 국가기후계획(NCP)을 설립하고 국가 기후사무국까지 두었다. 정부차원에서 엘니뇨관측을 강화해온 일본은 지난 19일 엘니뇨관측을 위한 열대강우관측위성(TRMM)을 쏘아올렸다. 중국도 90년 국가 기후변화그룹(SCCG)이라는 기후 전담기구를 설치해 100개 이상의 기후관련 연구사업을 추진중이다.
우리의 실정은 돌아보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엘니뇨 연구를 위한 유일한 시설로 필리핀 인근해상에 설치한 관측용 부이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2년째 놀리고 있다. 기상청에 설치된 엘니뇨대책반이란 것도 극히 초보적인 수준이다.
엘니뇨는 예측이 여간 까다롭지 않다. 82∼83년 엘니뇨는 저온과 강수량 부족을 초래했고, 86∼87년에는 극심한 봄가뭄과 7월의 집중호우, 93년 여름엔 냉해를 몰고왔다. 그동안 겪은 몇차례의 피해와 이번 겨울장마를 계기로 체계적인 연구는 물론, 기후 관리기구의 설립과 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인식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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