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시인 워즈워스는 혁명후의 프랑스를 다녀온 후 황폐한 프랑스에 비해 너무나 호사와 낭비로 들뜬 런던을 보고 소네트<런던 1802년> 을 썼다.「오 친구여, 어느 쪽으로 얼굴을 돌려 위안을 찾아야 할지 나는 모른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시민들의 생활이 「겉치레를 위해 옷을 입고 있다」고 한탄하면서 「가장 돈 많은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며 탐욕·낭비가 우상처럼 숭배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런던>
산업혁명으로 「세계의 공장」이 되어가던 19세기 초입의 영국은 신흥시민계급의 등장과 함께 배금주의가 성행하면서 도의는 타락하고 경조부박한 사회는 허영의 장터로 변해갔다. 이런 풍조를 청결한 시인의 눈으로는 차마 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워즈워스의 이 시에는 「소박한 생활과 고상한 생각은 이제 찾을 길이 없다」는 구절이 있다. 「소박한 생활과 고상한 생각」(plain living and high thinking)―이 명구는 여기서 나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는 꼭 산업혁명기의 영국이다. 산업혁명이 영국을 뒤집어 놓았듯이 갑작스런 산업화가 우리 사회를 급전시켰다. 인간 대신 부가 만물의 척도가 되었다. 돈 많은 사람이 가장 잘난 사람이다. 낭비와 과소비가 미덕인 사회다. 쩨쩨한 것은 소인의 지갑이요, 흥청망청은 대인의 호기다. 돈이 행차하는 곳에는 도의가 땅에 엎드리고 부가 호령하면 정의가 고개를 떨군다. 오늘 쓰지 않으면 당장 내일에는 휴지라도 된다는 듯이 지폐를 전단처럼 뿌리고 다니는 사람들, 오늘이 지구 최후의 날이기라도 한 듯이 뱃속을 실컷 채우고 실컷 토하는 사람들. 돈을 아끼면 무슨 알레르기가 생기는지,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유정이라도 발견했다는 말인지, 우리 사회는 실로 「런던 1802년」이다.
영국은 그래도 그 산업화로 자본주의를 달성하여 대영제국까지 건설했다가 무너졌지만 우리는 기껏 막 올라선 국민소득 1만달러의 고개에서 주저앉게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적 위기에 놓여있다.
「탐욕과 사치라는 두가지 부도덕은 모든 위대한 제국을 망하게 했다」는 말은 로마시대 이래의 경고다. 사치로 쓰러지지 않는 나라는 없다. 우리에게도 뻔히 예견되었었다. 그것이 예상보다 빨리 왔다.
우리 사회의 낭비와 과소비는 가난한 시절에 대한 한풀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이제 복수당한 가난이 가난한 시절을 잊어버린 우리 국민을 복수하려 하고 있다.
검약에서 사치에 들어가기는 쉬우나 사치에서 검약으로 돌아오기는 어렵다고 한다. 우리 국민은 가난에서의 탈출보다 더 어려운 탈출의 시련을 앞에 두고 있다.
오늘의 경제위기가 어째서 국민들의 잘못이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국민의 의식이 따르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다. 정치를 물론 탓해야 하지만 국민 자신도 반성해야 한다.
「군사독재가 일군 경제, 문민이 망친다」는 자조의 소리도 들린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민주화 투쟁이었던가 하는 회의의 탄식도 나올만큼 되었다. 독재자는 구멍이 헐은 허리띠를 매고 구멍이 뚫린 내의를 입으며 나라의 경제를 일으켰다. 이제 그런 근검정신으로 국민이 경제를 되살려야 한다. 그것이 민주화의 의미다.
우리 국민의 교육열은 단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이런 위기에서 탈출할 국민의 잠재력의 합산이 교육수준이다. 우리 국민은 저력이 있다고 한다.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국민들의 경제회생을 위한 자발적이고도 자생적인 자성·자구의 캠페인들은 고무적이다.
「생활은 낮게, 생각은 높게」―어느쪽으로 얼굴을 돌려 위안을 찾아야 할지 모르는 지금, 이것이 온 국민의 지표이지 않으면 안된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민도 모든 허세를 벗어던지고 모든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올해는 한보의 부도로 시작되어 여러 기업의 부도의 행진으로 이어지다가 마침내는 국가의 부도로까지 밀려온 한 해다. 결국 김영삼 정권 5년은 정치적 부도로 임기를 끝내게 되었다. 이 총체적 부도의 해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국가의 재기를 위해 온 국민은 「한국 1997년」을 명념하자.<본사 논설고문>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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