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사태 이전보다 훨씬 악성적/재벌급 일부도 블랙리스트 거명한국경제는 대형부도로 시작한 올 한해를 연쇄부도로 마감하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 경제구조조정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신청으로 이제 겨우 막이 올랐을 뿐이다.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기업부도행렬 역시 현재로선 그 종착점이 언제 어디일지 전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달들어, 특히 IMF 구제금융신청이후 기업부도의 도미노현상은 가히 「경악할 만한」 수준이다. 「기아사태가 일단락되면 부도행진도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을 비웃기나 하듯 한달도 못돼 12개 상장업체와 3개의 코스닥(장외)등록법인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금주엔 온누리여행사와 씨에프랑스, 썬웨이보일러, 에바스 등 낯익은 이름의 중소기업들이 줄도산했다.
이같은 기업부도행진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한보부터 기아까지 「연쇄도산 1기」에 비해 현 「연쇄도산 2기」는 확실히 작은 규모다. 해태 뉴코아외엔 「재벌급」기업은 없다. 그러나 연쇄부도의 구조적 원인을 추적하면 2기가 1기보다 훨씬 악성적이며 재벌급 도산도 일시 잠복됐을 뿐 재연은 시간문제라는게 금융권 평가다.
1기 침몰기업들의 직접적 도산원인은 종금사의 무차별 여신회수다. 한보에 겁이 난 종금사들이 부실기업어음을 집중적으로 돌렸지만 어디까지나 「채권확보」용이었지 「생존」을 위한 자구차원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은행은 기업들을 도와줬고 정부도 부도유예협약 협조융자협약 등 「도산방지장치」를 통해 제동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지금의 2기 도산행진은 「금융시스템 붕괴」하에서 진행되고 있다. 기아사태의 지연으로 국가적 대외신인도가 급격히 추락하면서 지난달 하순이후 종금사 외환위기는 은행으로, 원화위기로 번졌다. 준부도상태에 처한 종금사 여신회수는 그렇다해도 IMF의 상륙으로 스스로 존립위기를 맞은 은행조차 1기때와는 달리 기업대출라인을 속속 끄고 있다. 「실패한 정부」도 더이상 기업도산방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빚」경영의 한국기업들로선 새 빚을 내지 못하고 과거 빚을 독촉받는다면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은행 종금의 자금파이프는 막혔고 주식·채권시장경색으로 상장 증자 회사채발행을 통한 자금조달도 불가능하다. 해외직접차입이 봉쇄된 상황에서 은행들은 신용장(L/C)개설 및 수출환어음(D/A)매입조차 중단, 기업들의 자금확보채널은 안팎으로 동결된 상태다.
금융여신 2천5백억원이상 63대기업중 속칭 「블랙리스트」에 거명되고 있는 그룹은 10여개가 넘는다. 한결같이 과잉투자·과잉차입기업인 이들 중엔 10대 재벌급이 2, 3개, 10∼30대급도 4, 5개나 된다. 환차손이 많거나 섬유 건설 유통 여행 등 불황이 극심한 내수산업, 구조조정업종에 들어있는 업체들은 대부분 「위험기업」으로 거명되고 있다.
IMF 프로그램하에서 강도높은 긴축과 금융·실물구조조정이 시작된 이상 기업부도는 더 계속될 전망이다. 금융연구원 최공필 박사는 『구조조정이 경제의 새틀을 짜는 과정이라면 낡은 구조, 즉 과다차입·한계업종기업의 도산은 불가피하다』며 『당분간은 부도 자체가 익숙한 상황이 지속될 것이며 내년에도 상황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부도행진이 끝나려면 우선 끊어진 기업자금줄, 즉 무너진 금융시스템부터 복구되어야 한다. 한은 고위당국자는 『당장의 외환수급이 개선되더라도 부실금융기관정리 및 인수합병(M&A) 등 금융구조조정이 계속되는 한 대출경색은 쉽게 개선되기 어려우며 부도행진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부도행진의 끝은 바로 실물구조조정이 끝나는 시점이며 이는 금융정상화 보다 훨씬 긴 시간을 필요로 할 것으로 보인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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