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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96∼97년 연재/「흰옷 이야기」 채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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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96∼97년 연재/「흰옷 이야기」 채길순

입력
1997.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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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다룰 줄 아는 능숙한 이야기꾼/넉달여동안 부족한 점 고쳐 ‘흰옷이야기’ 3권으로 출간/내소설의 관심은 역사/역사란 샘은 깊고 넓어서 샘물이 늘 마르는 법이 없다「지아비는 참혹한 역사의 바람 앞에서 죽었고, 지어미는 스러진 지아비를 땅에 묻고 그 땅에 씨앗을 묻어 삶을 일구었다」

작가 채길순(42)씨는 우리 근·현대사의 한 면을 이 말로 요약하고 있다. 이 땅의 지아비는 착취와 외세와 이념에 희생당했다, 그래도 지어미는 지아비의 송장 묻은 그 땅에 씨를 뿌려 역사를 이어왔다. 그의 장편소설 「흰옷 이야기」는 바로 그 지어미들의 이야기다. 「밤마다 한을 길어올려 마침내 역사라는 새벽을 만들어 낸」 여인네들의 이야기.

채씨가 올 6월까지 1년반동안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흰옷 이야기」가 3권의 단행본으로 묶여져 나왔다(한국문원 발행). 「흰옷 이야기」는 당초 한국일보의 95년 광복 50주년 기념 1억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서 당선한 작품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소설적 성취에는 「토지」도 있고 「태백산맥」도 있다. 「지리산」도 있었고 「영웅시대」도 지나갔다. 채씨는 거기에 무엇을 보태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은 여자의 숨결이었다. 『옛적 우리의 어머니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자식을 내팽개치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딸로서 엄연히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우리 역사의 숨결이지요』

「흰옷 이야기」는 바로 그런 여인 4대의 이야기이다. 양반집 며느리였다가 일찍 청상이 되어 노비와 밤도망을 놓은 「조막년이」(정씨)가 있다. 「흰옷 이야기」는 그가 낳은 딸 「작은년이」와 그 딸, 딸의 딸, 그 딸의 딸인 「막금이」와 「똥칠개」(동희)와 「백단옥」(여옥)이가 살아 온 일백년간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종년」이었고, 양반의 「웃방들이」이자 「씨받이」였고, 일본인의 첩이었고, 정신대였고, 노동당의 첩자였고, 미군정 장교의 정부였다. 그들의 삶은 세도정치의 착취에 맞섰던 동학, 일제에 맞섰던 의병투쟁과 독립투쟁, 그리고 해방후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참혹하게 찢겨진다. 그러나 그들은 삶을 이어왔다. 이제껏 역사의 주도자로 전면에 나섰던 영웅이나 지식인들의 삶 대신 채씨는 이 여인들이 눕고 일어나는 잡초 같은 삶을 제시함으로써 역사는 영웅이나 지식인이 아닌 풀뿌리들이 이어왔다는 것을 있는 대로 보여준다.

소설은 정확히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 이어 북청으로 귀양 갔다 돌아온 해인 1852년에 시작해서 한국전쟁 중인 1951년에 끝난다. 200자 원고지 2,200장 분량의 그리 길지 않은 소설에 채씨는 우리의 근·현대사 100년을 담겠다는 욕심을 부린 셈이다.

그 욕심을 소설적으로 성취시킨 채씨의 무기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막힐 데 없는 구수한 입심이다. 여인네들의 이야기이지만 소설 자체는 오히려 그래서 더할 나위 없이 남성적이다.

「흰옷 이야기」는 빠르다. 근·현대를 다룬 역사소설이 범하기 쉬운 엄숙주의, 무거운 관념이나 이념의 옷을 채씨는 훌훌 벗어버렸다. 영화나 무협소설 뺨치는 빠른 장면 전환과 군더더기 없는 묘사, 넉살좋은 대화 위주의 문장으로 채씨는 그 100년간을 살았던 조상들의 숨결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했다.

그의 표현은 생생하다. 「최포교가 고목둥치 쓰러지듯이 푹 쓰러졌다. 사내가 달려들어 칼로 목을 끊었다. 벙거지를 풀어 내고 상투 머리채를 잡아 뿌리쳐 피를 뽑아내고 자루에 담았다. 그동안 다른 사내는 목 없는 몸뚱어리를 발로 굴려 강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두 사내는 주막거리 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동학교도들의 포졸 살해 장면같은 데서는 이처럼 피가 튄다.

소설화작업에는 『막상 6개월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채씨지만 그는 사실상 「흰옷 이야기」에 10년여를 투자했다. 특히 동학혁명 관련 부분이 그렇다. 현직 고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지방신문에 동학 관련 장편 「소설 동학」을 88년 이후 3년간 연재했던 무명의 작가 채씨. 그는 이때부터 휴일마다 자신의 고향인 충청지역의 단양, 청풍, 충주, 제천 등지에 이르는 지역을 샅샅이 발로 밟고 사진에 담았다. 「흰옷 이야기」 1부의 주무대인 남한강변의 이 지역들 중 목벌나루에서 황강나루를 거쳐 단양에 이르는 곳들은 충주호 건설로 이미 수몰돼 버린 곳이 많다.

그러나 채씨는 소설에서 당시의 나루터와 주막거리 등의 풍경을 눈에 잡힐듯 생생하게 그려냈고, 그곳에 살던 우리 조상들의 삶을 지금도 바로 곁에서 숨쉬는듯 걸쭉하게 풀어냈다. 노인네들을 만나 간신히 전해지는 「동학난리」의 이야기들을 캐물어 보고 하나하나 채록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지만 그의 30대는 온전히 동학에 바쳐졌다.

이 작업을 통해 그는 묻혀져 있던 「갑오일기」 등 값진 사료를 발굴해 내기도 했다. 「갑오일기」는 전봉준 손화중 김덕령 김개남과 함께 효수됐다고 역사에 단 한줄로 기록되어 있던 충청지역의 동학지도자 성두한의 활동내역을 소상하게 담은 문서이다. 채씨는 이 문서의 발굴로 충청지역의 동학사를 새로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그 이야기를 「흰옷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았다.

「흰옷 이야기」로 채씨의 삶도 크게 바뀌었다. 20여년 전 고교 때부터 「세대」지 등에 작품을 투고하며 소설가의 꿈을 키워왔던 문학소년, 83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무명의 고교 교사 겸직 지방신문 연재소설가였던 채씨는 「흰옷 이야기」로 단숨에 「역사를 다룰 줄 아는 능숙한 이야기꾼」으로 주목받았다.

작가로 진력하기 위해 고교 교사생활을 접었던 그는 올해부터는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로 작가지망생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일보 연재를 끝내고도 채씨는 「흰옷 이야기」를 넉달여 동안 다시 고쳐 썼다. 그리 많지 않은 분량에 100년의 역사를 담으려 하다 보니 『소설의 심도에 있어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고 정밀한 문장으로 다시 보충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동학 이야기는 내 손에서 떠나 보내었으면 합니다』

채씨는 그러나 『역사라는 샘은 너무나 깊고도 넓어서 거기서 길어 올리는 샘물은 늘 마르는 법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소설 동학」 외에도 일제시대 러시아 유이민사를 다룬 장편 「어둠의 세월」 등에서 늘 역사에 관심을 두어왔다. 『역사나 소설이나 다 오늘과 미래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다른 소설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삼국시대의 이야기를 다룰 「통일시대」(가제)를 통해 그는 곧 닥칠 남북의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를 다시 생각해볼 작정이다.

역사나 이념보다는 욕망이 일상에서도, 문학에서도 들끓는 이 연대. 채씨에게도 이것은 작가로서의 고민일 수 밖에 없는 듯했다. 『역사는 곧 모색입니다. 그것을 묻어둘 수는 없는 것이죠. 역사는 늘 오늘의 꽃밭에서 새롭게 피어납니다』라는 채씨의 말은 그 욕망에 쉽게 몸을 내던져 버리지는 않겠다는 작가로서의 다짐이었다.<하종오 기자>

□약력

▲55년 충북 영동 출생

▲83년 청주대 국문과 졸업,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꽃마차」 당선

▲88년 청주 세광고 교사

▲91년 장편소설 「소설 동학」(전 5권)

▲93년 장편소설 「어둠의 세월」(전 2권)

▲95년 한국일보 광복 50주년 1억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흰옷 이야기」 당선

▲97년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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