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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위기’ 열외인가/노화준(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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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위기’ 열외인가/노화준(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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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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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외환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국민의 비통한 심정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지난 봄 한보부도사태 이후 연이은 대기업들의 부도가 기아사태로 이어지더니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달러화의 가치가 수직상승하는 금융위기로 치달았다. 이제 국민은 금융위기를 넘어선 총체적 국가위기의식마저 느끼고 있다. 국가경제가 여기에 다다르게 된 것이 어디 한 두 사람의 책임이겠는가.이제 우리는 어느 집단,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 경제, 우리 사회를 살리기 위하여 각 집단과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온갖 지혜를 모으고, 짜낼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바쳐야 할 때다. 해외각지의 교민들까지도 고국에 외화 보내기 운동에 나서고 있고, 국내에서도 외국동전 한닢까지도 은행에 예금하자는 시민단체들의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위기에 빠진 경제를 구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과 시민단체들이 나서는 것을 보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국민의 저력과 협동·자조정신이 다시 살아나리라는 희망과 확신이 가슴속에 뿌듯하게 차오름을 느낄 수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 경제를 구하자는 운동이 확산되어 가는 마당에 일부 공직자들이 시급히 결정하여 집행해야 할 정책사항이나 민원업무들을 대선 후 들어설 다음 정권의 국정방침이 어떻게 결정될지 모른다는 핑계로 미루는 복지부동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니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중에는 정부가 마땅히 해결했어야 할 경제·사회문제들을 관료집단들이 부처 이기주의에 따라 서로 다투면서 책임을 전가하고 허송세월함으로써 정책결정과 집행의 적기를 놓친게 비일비재하였고, 이러한 것들이 경제난국을 초래한 주된 원인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그 결과 지난 1년여 동안에만도 많은 기업이 도산하여 실업자가 양산되었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구조조정이다 감량경영이다하여 수많은 사원을 명예퇴직·조기퇴직이라는 이름으로 해고했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공무원들의 신분은 대부분 보장되어 왔다. 일부 중앙부처들의 통합과 일부 시군들의 통합에 따라 조직들이 통폐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공무원들의 신분은 보장되고 인력은 감축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모진 경제한파를 겪는 과정에서나 정부부문의 구조조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도 공무원의 신분은 철저히 보장되어 왔으며, 승진에 있어서도 4, 5급에 복수직급제도를 도입하여 그동안 누적된 공무원들의 승진적체를 해소하는 등 국가는 공무원의 사기진작을 위하여 노력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공무원을 보호하고 있는 것은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그리고 시민들이 겪고 있는 민원의 해결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봉사해 달라는 바람에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라고는 하지만 공무원들이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나 시민들이 제기하는 민원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다음 정권에서 새로운 방침이 세워져야만 해결할 수 있다는 자세로 미루는 것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배신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다음 정권의 구조조정과정에서 현재 사기업 부문에서 겪고 있는 것과 같은 해직한파가 일도록 자초하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관료집단은 분야별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축적해온 전문지식과 방대한 정보, 정책목적과 수단간의 인과관계에 관한 정확한 지식, 정책목표의 타당성을 검토할 수 있는 상황논리의 개발능력,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실현에 기여할 수 있는 적절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의 구축능력 등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전체를 보고 새로운 정책을 구상하고 기획·설계하며, 광범위한 정책네트워크를 통하여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보유한 집단이다.

공무원들은 복지부동의 자세를 버리고 국가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적실성과 타당성이 높은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함으로써 지금의 위기상황으로부터 탈출하는데 헌신하여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미화 1센트라도 예입하여 위기탈출에 동참하겠다는 어린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약속하기 위해서라도 국민의 동참의지와 에너지를 발전과 도약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시의적절한 정책을 개발, 추진하는 일에 한시라도 게을러서는 안될 것이다.<서울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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