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처럼 절제된 진술과 묘사들나희덕의 시가 단아하고 아름답다는 것은 그렇게 터무니 없는 선입견은 아닐지도 모른다. 이번에 나온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민음사 발행)를 독자들이 읽게 된다면 그 단아함이 많은 고통과 그 고통이 요구하는 예리한 침묵을 숨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그 고통은 우리가 일상적 공간에서 자주 경험할 수 있는 상실 혹은 환멸 같은 정서적 세목들이다. 하지만 의미있는 것은 그런 정서적 현실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의 내부를 파고 드는 마치 침묵처럼 절제된 진술과 묘사들이다.
그의 어떤 시들은 전통적 서정시의 일반적 어법이 그러한 것처럼, 「나」와 「너」 사이의 연애시적 상황을 설정한다. 여기에는 「너」의 부재 속에서 「너」의 이름을 부르거나 「너」를 기다리는 실존적 조건이 부여된다. 하지만 나희덕은 낭만적 신화와 초월적 포즈 속으로 절망을 감추어 스스로에 대한 지독한 회오를 지워버리지는 않는다. 「고통에게」 연작에서 시의 화자는 「너는 정작 오지 않았던 것이다」 「사는 건 쐐기풀로 열두 벌의 수의를 짜는 일」이라고 말하고, 그래서 「삶이 내 손을 그만 놓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 죽음에 기대어 피어날 꽃」과 「꽃보다 적게 산 나」를 말하는 순간에, 저 떨리는 생의 모순 앞에서 시적 화자는 겸허하게 고통의 절규를 안으로 삼켜 시의 언어로 만든다.
그래서 「너」의 가혹한 부재 앞에서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얼어붙은 호수」에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천창호」)과 같다고 하더라도,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푸른 밤」)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왕복하는 내면의 드라마들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침묵처럼 자신의 일부를 드러내놓고 있는 이런 장면들이 나희덕의 시를 이룬다. 우리는 다만 그 속에서 생의 사소한 그러나 날카로운 아픔들이 어떤 단아한 언어들로 빚어지는 비밀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문학평론가·서울예전 교수>문학평론가·서울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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