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통합이자 경쟁/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자뿐/‘시장의 정글법칙’만 존재한다얼마전까지 세계화는 김영삼 정권이 주창한 「신한국」의 슬로건이었다. 세계화의 개념에서부터 실천방안까지 어떻게 하는 것이 세계화인지 모호하긴 했지만 별로 거부할 만한 이유는 없어보였다. 그런데 지금 무너져가는 한국경제의 SOS를 받은 국제통화기금(IMF)은 새삼 한국에 「세계화」를 강요하고 있다.
IMF가 우리의 목을 잡아끌며 요구하는 세계화의 정체는 부실 금융기관 정리, 산업구조 조정, 긴축재정 등이다. 이 그럴 듯한 경제용어들은 한마디로 미국 자본을 중심으로 한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확실히, 그리고 신속히 편입·종속될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 기자인 한스-페터 마르틴(40)과 하랄트 슈만(40)이 함께 쓴 「세계화의 덫―민주주의와 삶의 질에 대한 공격」은 지구촌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시키면서 동시에 「경쟁」이란 이름으로 갈가리 찢어놓는 「세계화」의 야누스적인 이중성을 고발한다. 이들이 진단하는 21세기의 미래는 암울하다. 『세계화는 민주주의와 삶의 질(사회복지)을 향해 공격의 고삐를 다잡으며 세계를 「20대 80의 사회」로 재편해가고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초거대자본과 첨단기술의 발달로 앞으로는 전세계 노동력의 5분의 1만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 나머지는 20%라는 소수의 생산적 노동력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부에 「빌붙어」먹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로 철저히 양분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저 악몽과도 같은 「시장의 정글법칙」 뿐이다. 이제 경쟁이 모든 것이고 민주주의나 복지, 일자리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다』
재미있는 것은 두 필자가 개도국 출신이 아니라 그래도 잘 나간다는 독일 국민이고 사례도 독일 등 유럽 선진국의 것을 주로 들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만 해도 96년 기준으로 벌써 600만명 이상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또 이미 있는 일자리조차 어떠한 것도 안전한 것이 없다. 생산직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화이트컬러의 고급직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조차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 하물며 국가파산 지경에 이른 한국인 마당에야!
그렇다면 대안은? 두 필자는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니 제시하지 못한다. 그저 유럽적 차원에서 미국 자본을 중심으로 한 강요된 세계화로부터 그나마 벗어나기 위해 화폐통합 등 유럽의 단결을 촉구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장미빛 세계화의 덫에 걸리지 않을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다. 고려대 경영학과 강수돌 교수가 옮겼다. 영림카디널 발행, 9,000원.<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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