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의 열쇠 물… 정화수가 으뜸/동의보감 탕·고차편서 차와 물의 중요성 강조/한천수·국화수·설매수 등 물을 35가지로 구분 소개허준(1546∼1615)의 묘소는 북녘 땅을 보고 있다. 경기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 마석동. 출입이 통제된 임진강 너머 민통선안이다. 묘 앞에 서면 눈 앞의 DMZ를 건너 개성벌이 한손에 잡힐 듯 하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허준의 묘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부근 지형이 바뀐 탓에 위치를 알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지난 91년 묘를 지키던 비석이 깨진 채 발견돼 묘가 있던 곳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경기도지정문화재 기념물 128호로 지정되어 말끔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물을 중하게 여기는 차인들에게 허준의 동의보감은 바로 지침서이다. 동의보감 25책중 탕편을 보면 그가 물과 차에 얼마나 비중을 두었는지 알 수 있다.
탕편 수부에서 허준은 의성답게 물을 생명의 근원이라고 단정했다. 「하늘에서 처음 생긴 것이 물이므로 물을 처음 싣는다」는 말로 시작되는 수부에 허준은 「사람의 형체에 뚱뚱한 것과 야윈 것이 있고 수명이 길고 짧은 것이 있는 것은 남과 북의 물과 땅이 같지 않음에서 비롯한 것」이며 「물은 생로병사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적었다.
허준이 구분한 물은 모두 35가지. 허준은 먼저 우물물에 대해 멀리서 오는 지맥에서 나는 것이 상이며 가까운 곳에 강이 있는 것은 중이다. 사람이 많이 사는 성안 우물은 도랑 오수가 스며들어 산성이 되므로 반드시 끓인후 위에 뜨는 맑은 물을 써야한다고 적었다.
우물물 중에서는 새벽에 처음 깃는 우물물 정화수를 제일로 쳤다. 정화수에는 하늘에서 생긴 진정의 기가 엉겨 있으므로 제사나 차례 치성에는 이 물을 써야한다고 적어두었다. 당연히 선비들이 봄차를 끓이는데도 이 물이 가장 좋다고 했다. 정화수중에서도 초승, 그믐보다는 반달이나 만월의 인력을 받은 정화수를 으뜸으로 쳤다.
두번째는 찬 샘물인 한천수. 정화수와 함께 찻물로 쓰면 차의 정기를 마실 수 있다고 했다. 세번째 좋은 물은 국화꽃으로 덮힌 못에서 길어온 국화수로 성질이 온순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어 안색을 좋게 하고 오래 마시면 수명이 길어지고 노화를 억제한다고 했다. 국화는 사람에게는 약이 되고 벌레나 곤충을 제어하고 소독하는 성분이 있다는 것이 허준의 생각이었다. 네번째는 동지 뒤 세째 술일에 오는 눈을 받은 납설수, 다섯째가 정월에 처음 온 빗물인 춘우수다. 약을 다려 먹으면 양기가 상승하고 부부가 한그릇씩 마시고 자면 자식을 보는 신비로운 효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허준이 좋은 물로 꼽은 물은 많다. 그중 백매화 가지에 앉은 첫눈을 단지에 눌러 담아 땅속에 묻어 두었다 마시는 설매수는 이젠 공해때문에 전설속의 찻물이 됐다. 가을 이슬을 받은 추로수는 늦가을 초겨울의 찻물로 제격이었다.
허준이 좋은 물로 꼽은 물을 더 소개해보면 겨울에 온 서리물인 동상, 한천수를 석빙고 등에 얼려 놓았다 여름에 마시는 하빙, 부스럼 독을 씻고 흉터를 없애며 옷을 빨면 때가 잘 빠지는 방제수, 매실이 누럴 때 온 빗물인 매우수, 대울타리 끝이나 넓은 나무의 구멍에 고인 빗물인 반천하수 등이 있다.
멀리서 흘러온 천리수는 병을 앓고 난후 허한 몸을 다스릴때 오래 휘저어 약을 다리면 좋다. 큰 비가 지나간 후 맑지 않은 강물은 산골의 독버섯 독초의 성분이 섞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았다. 흐르는 물은 도가니에 받아 하룻밤을 지낸 다음 찻물로 써야하며 황토땅을 파서 만든 구덩이에 물을 붓고 휘저었다가 한참 지난 후 위에 뜨는 맑은 물인 지장수는 해독에 쓴다. 심산유곡 새 흙 구덩이에 괸 물인 요수는 비위를 고르고 식욕을 돋군다. 좁쌀 죽을 끓일 때 위에 뜨는 맑은 물인 장수는 맛이 달고 시며 독이 없다. 누에고치를 달인 물 조사탕은 뱀독을 다스리고 살충에 좋다. 생숙탕, 숙탕, 증기수, 마비탕, 동기상즙 등 갖가지 물의 성품과 쓰이는 곳이 계속 소개된다.
허준은 고다편에서 차를 한글로 「쟉셜차」라고 쓰고 「그 성품이 약간 차다. 맛은 달고 쓰며 독이 없으므로 기를 내리고 소화를 잘시키고 머리와 눈을 맑게하며 소변을 쉽게 한다」「차는 또 잠을 적게하고 또한 구초독을 풀어 준다」고 설명했다. 허준은 거위구이를 즐겨 먹는 이에게 반드시 속에 종기가 생겨 죽을 것이라고 진단했으나 그가 병없이 죽자 조사를 한 끝에 매일 찬차 한사발을 마시고 잤다는 것을 알아냈다. 녹차 외에도 국화꽃잎을 끓여 먹으면 수명을 연장한다든지 무궁화 꽃을 끓여 마시면 풍을 다스릴 수 있다는 등 꽃으로 만든 차의 효험도 남겨놓았다.
이은성(88년 작고)씨의 「소설 동의보감」이 나오기 전인 90년까지 허준의 묘소가 어디 있는지는 일반의 관심밖이었다. 그러나 소설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묘소찾기가 시작돼 파주시 민통선안에서 깨진 비석을 찾을 수 있었다. 이어 93년에는 고향땅인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그의 호를 딴 7,000평 크기의 구암공원이 조성되고 동상까지 만들어 졌다.<김대성 편집위원>김대성>
◎알기쉬운 차입문/차관 뚜껑 손잡이는 손가락으로 집어서 빠지지 않아야 적당
차관 뚜껑 손잡이는 잡기 편리해야 한다. 기능을 무시한 채 보기 좋게 만든다고 작게 만들거나 과장하여 크게 만들면 여간 불편하지 않다. 뚜껑 손잡이를 작게 만들면 잡다가 놓치기 쉽고 크게 만들면 차관이 무거워진다. 손가락으로 집어서 빠지지 않을 정도의 크기가 적당하다.
차관 뚜껑에 나 있는 구멍을 흔히 숨구멍이라고 한다. 이 구멍은 물이 부리로 잘 나오게 하기 위해 뚫어 놓은 것이다. 중국 차호의 경우 숨구멍을 막으면 잘 나오던 물이 순간에 멈추어 마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검지 손가락으로 숨구멍을 막았다 놓았다 하면서 물흐름을 조절하며 차를 마시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생활속의 과학이 차마시는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차그릇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숨구멍이 무의미하다. 뚜껑과 차관의 몸통이 꼭 들어 맞지 않고 틈새가 많아 숨구멍이 있으나 마나다. 우리것보다 중국차호가 잘 다듬어져 기능적으로 앞선다는 말이다. 차를 따를 때 이 숨구멍을 어디에 두는가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아주 간단한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숨구멍은 부리와 멀리 떨어질 수록 좋고, 손잡이에 가까울 수록 좋다. 대체로 뒷손잡이 차관일 때는 부리와 숨구멍 손잡이를 수직으로 두고, 옆 손잡이 일 때는 부리와 90도 꺾어지는 곳에 숨구멍과 손잡이를 두도록 한다. 어떤 차관의 숨구멍은 뚜껑 한가운데 있기도 하다. 뜨겁게 차를 마실 때 손이 데이지 않게 뒤한 배려로 생각된다.
차를 만드는 사람은 차를 잘 만들어야 하고, 그릇을 만드는 사람은 그릇을 잘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마시고 사용하는 사람은 차와 그릇의 특성을 잘 알아야 맛있는 차 한잔이 우러 난다.
숨구멍 하나라도 소흘히 하지 않을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물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박희준 향기를 찾는 사람들 대표>박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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