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연·대우연 등 연구보고서 연초부터 재경원 수차례 제출/회수소동·함구령·면박만 당해한국금융연구원 등 민간연구소들은 올해초부터 이미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를 경고하는 보고서를 재정경제원과 청와대에 잇따라 제출했으나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경제수석은 이를 묵살, 한국경제가 「국가부도」의 위기에 직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으로 드러났다.
「강경식―김인호」경제팀은 심지어 「곧은 소리」를 하는 연구기관에 대해 『외환관련 분석자료를 내지말라』는 함구령까지 내리는 등 독선과 아집으로 일관, 최근의 외환위기 심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강 전부총리에게 「곧은 소리」를 했다가 혼쭐이 난 대표적인 기관은 한국금융연구원(원장 박영철)이다. 금융연구원은 지난 3월 「97년도 경제전망과 금융·외환시장동향」이란 연구보고서를 통해 『수입금액에 대한 외환보유고비율, 자본유입의 구성 등 여러금융지표가 위험수위에 도달하여 우리나라에서 멕시코사태와 같은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대기업의 연쇄부도로 금융기관들이 거액의 부실채권을 보유하게 될 경우 경제는 심각한 위기상황에 봉착할 우려가 있다. 대응책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 전부총리에게 건의했다. 그러나 강 전부총리와 재경원 간부들은 『앞으로 멕시코란 말조차 거론하지 말라』는 함구령과 함께 간행물로 발간된 보고서를 다시 거둬들이도록 지시, 회수소동까지 벌어졌다. 당시 보고서를 작성했던 연구담당자는 이후 외환관련 분석업무를 그만두고 「근신」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금융연구원은 3월이후 여러차례 금융위기 발생가능성을 지적하며 대응책마련에 실기하지 말도록 끈질기게 건의했으나 강전부총리는 거듭 면박만 줬다. 금융연구원은 특히 이달초 금융상황이 심상치 않게 진행되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조요청을 해야 할 것이라고 건의했지만 이 또한 묵살되고 말았다.
연구원 관계자는 『한국에 멕시코사태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마음에서 줄기차게 건의했지만 결과적으로 한국판 멕시코사태가 터지고 말았다』며 『지금의 금융위기는 정책실패의 표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IMF구제금융신청도 때를 놓치고 말았다』며 『결국 IMF로 가고 말겠지만 건강상태가 어느정도 좋았을 때의 수혈과 건강이 극도로 나빠진 후의 수혈은 그 효과가 천양지차』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의 다른 관계자는 『정부의 금융정책은 실기의 연속이었다』며 『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도 하지 않고 하지말라는 것만 골라서 한 결과 참담한 실패를 초래했고 국민경제에 회복할 수 없는 부담을 주고 말았다』고 강조했다.
대우경제연구소(소장 이한구)도 재경원으로부터 면박을 당하긴 마찬가지였다. 지난 4월과 10월 2차례에 걸쳐 『우리나라에서의 멕시코사태 발생가능성은 커지고 있으며 정부는 인위적인 통계수치에 집착하지말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보고서를 냈다가 모 기관으로부터 「경고」를 받고 이후 외환관련 자료를 일체 발표하지 못했다.
대우경제연구소의 외환연구원은 『이번 외환위기는 다분히 정책실패로 인해 초래됐다고 볼 수 있다』며 『당국이 현실과 괴리를 보이고 있는 인위적인 통계지표만을 내세워 안이한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의 불안심리와 정책불신은 더욱 커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고 지적했다.<유승호 기자>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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