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체면’ 잃는 수모지만 금융개혁·구조조정 기회/국제수지 방어여부따져 정부 ‘적절한 선택’을한 동안 주춤하다가 주초부터 다시 계속되는 환율 급등세는 금융기관들이 겪고 있는 외화차입 상환자금 조달의 어려움을 반영하고 있다. 이들 금융기관의 대외신용도 하락으로 인하여 이제까지 신용을 공급하였던 외국금융기관은 종전과 달리 대출기간을 연장해주지 않고 상환을 요구하며 또 신규대출을 거부하고 있다.
현재 민간 금융기관 또는 국책은행을 통하여 외화차입을 기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으며 또 가능하지도 않은 것 같다. 대신 한국은행을 포함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히 요청되나 이 또한 국가 신용도의 하락으로 용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현재의 통화위기는 대외결제자금의 부족으로 인하여 국제수지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저축률, 빠른 속도로 개선되는 경상수지 등 실물부문의 거시 기초변수가 건실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이 조성되는 것은 건전한 기업이 일시적인 자금부족으로 인하여 흑자부도에 직면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현 난국을 타개하는 방안으로 강력한 금융안정책을 들고 나왔다. 금융기관의 대외 신인도를 회복하기 위한 부실여신 정리 및 부실금융기관의 인수합병을 포함한 금융산업 구조조정, 부실채권 정리기금의 확충 등의 내용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대책은 왜곡된 금융시장을 교정하는데 있어서 매우 적절한 조치라고 본다. 그러나 과연 이 시점에서 우리의 대외신용도를 높이는데 시의적절한 것인지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우선 너무 늦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금융기관의 단기 해외차입 규모와 부실화의 정도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이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한국의 금융위기는 더 이상 지역적 문제가 아니며 이미 국제금융시장에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악재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동아시아 국가가 겪고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앞으로 더 악화할 수 있으며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가 쉽게 회복되지 못한다면 세계경제는 불황에 빠질 지 모른다는 우려가 국제금융계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확산되고 있다.
현재 국내외에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요청할 것인지의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한 득실을 따져 보기로 하자. 우선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한 나라가 외채를 상환할 능력이 없어서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다는 것은 마치 부도가 난 기업이 법정관리를 받게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비록 구제금융의 공급으로 금융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나 부실채권 및 부실금융기관의 정리에서부터 통화관리, 정부예산의 집행과 같은 거시정책의 운용, 금융개혁과 금융개방 등 나라살림을 꾸려나가는데 필요한 경제정책 일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이 기금의 구제금융 조건에 따라 이행하게 되는 수모를 당해야 한다. 또 법정관리를 받은 기업이 또 부도를 내는 것처럼 과연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으로 금융위기가 해소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여전히 남아있다. 구제금융을 받은 동남아국가의 경제상황이 뚜렷이 개선되는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데서 이와 같은 우려를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기금으로부터의 구제금융은 악화일로에 있고 미래가 극히 불투명한 현 시점에서 국제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경제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금융개혁과 구조조정 그리고 노동시장 개혁 등 현실적으로 우리 스스로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를 차제에 과감히 단행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라 체면」이 잃게될 명분이라면 대신 「위기로부터의 탈출과 개혁」은 취할 수 있는 실리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80년대초 외채위기를 극복하지 못하였던 칠레는 7년 남짓 외부세계로부터의 지원이 단절된 채 인고의 세월을 보냈지만 가장 모범적인 약속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였다.
기금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것인지의 여부는 국제수지를 방어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고 이에 대해서는 정부만이 올바른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외환의 수급상황에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정부가 위기의 실상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금융안정정책이 당초 기대했던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면 정부는 「지체없이」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한다.<경제학>경제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