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치·사회운동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웨이징성(위경생)이 16일 악명높은 난바오(남보)형무소를 나와 미국으로 떠났다. 서방언론은 웨이징성의 석방과 출국을 놓고 중국 인권정책의 변모니, 골칫덩어리의 외국유배니 하며 떠들썩하지만 중국언론은 「건강치료를 위한 인도적 조치」라는 담담한 반응이다.「탐색」이라는 비밀 간행물의 편집장이던 웨이씨는 74년 덩샤오핑(등소평)의 정책을 대담하게 비판한 「티엔안먼(천안문) 민주화의 벽」 사건으로 체포됐다. 국가전복 혐의로 14년 6개월을 복역한 그는 93년 형기를 6개월 남기고 석방됐으나 다시 반체제 활동을 하다가 잡혀가 95년 12월에 1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다.
47년 생애중 3분의 1 이상을 옥중에서 보낸 그의 삶은 중국내 반 공산당 목소리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알렸다. 또한 중국 인권상황에 대한 비판의 실증적 근거가 돼 왔다.
그의 석방과 출국은 정치냄새가 물씬 풍긴다. 장쩌민(강택민) 주석의 방미성과, 즉 확고한 일국양제에 대한 미국의 지지와 경제적 실익 등에 대한 답례라는 분석이 무성하다. 분명한 것은 중국 인권정책의 전환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중국의 모순을 소리 높여 질타했던 베이징(북경) 번화가 시단따지아(서단대가)의 회색담장은 여전히 옛모습 그대로지만 어디에서도 대자보는 찾아볼 수 없다. 길이 200여m의 담은 널찍한 창안지아(장안가)와 마주해 있고 2㎞ 정도만 달리면 바로 티엔안먼 광장이다. 회색담을 따라 한가롭게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광장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 누구도 웨이씨 사건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 아니다. 중국 당국이나 일부 지식인들은 웨이씨의 주장이 중국 전체 인민의 정치적 평등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며,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중국사회의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미국으로 떠난 웨이씨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가 꿈꾸고 쟁취하려 했던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는지가 대단히 궁금하다.<베이징>베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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