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혈과 장애인 설움 시 쓰며 녹여버렸죠”/흑인 혼혈에 중증 뇌성마비 고통을 승화한 80편의 시/‘나는 바보가 좋다’로 엮어 오늘 조촐한 출판기념회『두살때 나를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장애인으로 태어난 세상에 대한 서글픔도 시를 쓰면서 봄눈녹듯 사라졌다』 연필을 쥘 수도 없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이며 흑인혼혈인인 이영철(36·인천 부평구 삼산동)씨가 첫시집 「나는 바보가 좋다」(개마출판사)를 내고 19일 하오 6시반 서울 종로 5가 기독교 연합회관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가진다. 86년부터 써온 시 수백편이 대학 노트 열권에 가득차고 이 시들을 읽어본 주위사람들이 「우리들만 읽기엔 아깝다」며 출판을 추진해 시집이 나오게 됐다. 이번 시집에 담긴 시는 80편.
휠체어를 타지 않고는 움직일 수 없는 이씨는 학교 문턱에도 못갔지만 혼자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다. 이씨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삼국지. 4번이나 읽었다. 「한국의 명시」 「세계의 명시」시리즈도 탐독했다. 이씨는 『처음엔 재미로 시를 쓰기 시작해 점점 마음의 위로가 되어 계속 쓰게 됐다』고 말한다. 말 한마디 하는데도 몇분이 걸리는 이씨는 친구들이 옆에 있어야만 시를 쓴다. 어렵게 토해내는 시를 받아 적어줄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백일때 열병을 앓아 장애인이 된 이씨는 어머니 이금자(67)씨와 12평 영구임대아파트에 단둘이 산다. 주한 미군이었던 아버지는 온몸이 흐느적거리는 아들을 보고는 이씨가 두살때 미국으로 가버리고 소식을 끊었다. 이씨는 『20대 까지만 해도 나를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잠을 못이룬 적이 많았지만 시를 쓰고 신앙을 가지면서 고통을 이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씨는 이런 생각을 「그리운 아버지」란 시에 담았다.「아버진/나랑 어머니를 두고 떠나갔습니다/때로는 미워도 하고/때로는 증오도 하면서/삼십 육년을 살았습니다/…/아버지/사랑한다고 이 아들 말하겠습니다」 시인 이해인 수녀는 이씨 시집의 추천사로 『이씨의 시는 하느님과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는 가운데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 부담이 없고 편안히 읽힌다』고 써주었다.
『장애가 없고 혼혈이 아니었다면 하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절망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는 이씨는 『장애인들도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세상을 헤쳐 나가면 할 수 있는 일도 있다』고 말한다.<노향란 기자>노향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