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안이한 탁상논쟁·장밋빛 낙관론 일관/정책 실기겹쳐 “기업부도를 국가부도로 비화”「현 금융위기는 인재다」. 압축성장후의 거품, 전세계적 금융위기 등 불가항력적 요인도 많지만 정책당국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대처했더라면 지금같은 공황상태는 예방가능했다는게 공통된 지적이다.
경제전문가 및 금융계 인사들은 외환위기의 중요원인으로 정부의 「현실감각결여」를 꼽고 있다.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고 안이한 탁상논쟁과 장미빛 낙관론으로 일관하다보니 ▲정책우선순위가 뒤바뀌고 ▲정책타이밍을 실기하며 ▲정책실패의 책임까지 지지않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현 경제팀은 모든 정책이 늘 한 타이밍씩 늦었다. 금융위기 진원지로 꼽히는 기아사태만해도 결국 법정관리로 끝날 것을 소모적 공방으로 시간만 끌다 특정기업부도를 국가경제부도로 비화시켰다. 한 당국자는 『기아를 일찍 처리했어도 이런 위기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시인했다.
학계와 금융계는 올초부터 「제2의 멕시코」사태를 우려하며 대비책마련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걱정없다」 「펀더멘탈(경제기반)이 다르다」며 일축하고 말았다. 한 금융계 고위인사는 『연초 외환위기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얘기했다가 정부인사들로부터 힐책을 받았다』고 말했다.
연세대 정창영 교수는 『달리 경제기반도 괜찮고 핫머니위험도 적은 우리나라에 금융위기가 야기된데에는 정부의 정책타이밍이 늦은데도 원인이 있다』며 『정부는 좀더 일찍, 좀더 확실한 메시지를 해외투자자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 강철규 교수도 『현실인식이 적절치 못하다보니 적절한 대책이 제때 나올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9월이후 정부가 내놓은 여러번의 안정대책은 번번히 실패했다. 금융을 잘못 다루고 있다는 증거다. 강철규 교수는 『우리나라는 상품시장보다 금융 토지 노동 등 요소시장이 특히 취약하다』며 『시장이 없는 곳에서 시장원리준수를 강조하다보니 이같은 결과가 초래됐다』고 말했다.
환율운용에서도 당국은 시장의 신뢰감을 상실했다. 환율상승 억제인지, 용인인지 당국의 뜻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한 딜러는 『당국은 저지선을 언론에 흘리고 투기세력 세무조사까지 운운하면서도 하루 이틀도 못돼 발(개입)을 빼기 일쑤였다』라며 『시장은 더이상 당국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다른 딜러는 17일 환율폭등과 관련, 『환율을 사수하겠다는 당국의 말을 믿고 보유달러까지 팔았던 선량한 시장참여자들만 손해봤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금융시장이 붕괴 일보직전에 처해있는데도 대책발표는 미룬채 한은법 파동속에 재경원은 국회로 달려가고 한은은 준파업사태에 들어가 「정책공백」상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서도 일선 금융권의 반응은 「분노」에 가깝다. A은행임원은 『시장이 죽어가는데 정부는 무엇이 먼저인지를 모르고 있다』며 『과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인재의 금융위기를 진화하려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라도 더이상의 실기는 용납되지 않는다는게 금융계 지적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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