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은 이미 외양간서 소잃는 형국/감독기구 통합 논의 점진주의입장은 곤란땅속 깊이 「이상한 나라」로 빠져 들어간 「앨리스」는 갖가지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요즘 금융개혁법안을 둘러싸고 역시 묘한 경험을 하고 있다.
중앙은행, 각종 금융감독기구 노조원들이 가두시위와 농성을 벌이고 경제학교수들이 성명서를 내고 있다. 이들은 눈치보기에 바쁜 국회를 더욱 혼돈시키고 있다. 요즘처럼 국내 통화의 대외가치가 위협받고 금융시장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이 무슨 소란인가.
소란의 초점은 중앙은행의 중립성을 확보하고 금융감독기능이 강화되도록 제도를 통합, 정비한다는 내용을 받아들이는 관점의 차이에 있다. 개편을 찬성해야 할 중앙은행 등 관계기관의 다수 직원들이 오히려 반대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고 관치금융방식의 기존제도가 존속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라는 집단이기주의가 문제의 뿌리다.
중앙은행의 독립은 정치권 등 외부 영향력에 따라 통화신용정책이 좌우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집행기구의 독립을 뜻하지 아니한다. 이렇게 보면 개편안에서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직을 재경원장관이 아니고 별도로 자리 매김한 것은 타당하다.
지난날 관치금융의 폐해, 규제완화에 따른 각종 금융리스크의 증폭 등은 앞으로의 금융감독은 통합된 기구가 하여야 효율적이라는 것을 대변하고, 이는 시대적 요청이다.
금융겸업화의 진척을 더 두고 보아가며 감독기구 통합을 논의하자는 점진주의 입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하면 자칫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 되기 쉽다. 86년 10월 영국의 금융 「빅뱅」(Big Bang)은 감독기구로 몇개의 자율기구를 설립하는데 그쳤다. 그러다가 대형은행인 BCCI가 파산하고, 가장 유서 깊은 머천트 뱅크인 「베어링스」(Barings)가 도산직전 네덜란드의 「ING」에 합병되는 수모를 경험하고 난 다음, 올해 중앙은행을 독립시키되 중앙은행이 갖고 있는 감독기능을 신규 통합감독기구로 대폭 이관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우리가 금번 국회에서 중앙은행과 금융감독기구를 개편하는데 성공한다면 대형금융사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게 된다. 솔직히 말한다면 이미 한국금융은 외양간에서 송아지에다 큰 황소까지 잃고 있는 실정이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금융개혁이다.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로」 돌리듯 금융감독의 기본권한은 정부기구의 몫으로 돌리자. 최근 군말 없이 개편에 응하는 영국중앙은행의 모습을 보라. 그간 한국은행 내에서 감독원의 위상은 어떠했던가. 그것은 우수직원이 스스로 선호하기 보다는 기피하는 부서였다. 오히려 잉여인력이 배치·처분되는 부서라는 분위기 속에서 효율적 감독기능을 발휘하기에도, 민간금융기관에 대한 규제서비스를 제공하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기존 감독관련 직원들의 반발은 기구개편에 따른 인원정리와 보수삭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관 이기주의는 물론 관치금융의 본산인 재경원측에도 있다. 금융개편작업이 지지부진하여 기존의 규제제도가 존속하는 것을 내심 반길 측은 재경원관료들이라는 사실을 중앙은행 직원들은 올바로 알아야 한다. 한은법이 바뀌지 않고 재경원장관이 금통위의장직을 계속하는 한, 관치금융의 틀은 그대로 지속된다.
신설 금융감독위원회의 소속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총리실 산하에 두기로 한 금융개혁위원회안은 과거 관치금융의 전통을 의식해 금융개혁방향을 가장 확실히 바로 잡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재경위 소관에서 행정위 소관으로의 권한이양을 기피하는 국회내부의 집단이기주의가 작용하면 금개위를 재경원 산하에 두는 수정안이 나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집단이기주의의 놀음을 즐기고 있을 계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국제금융기구 등 세계의 눈이 한국의 금융개혁이 투명하게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가를 주목하고 있다. 그 핵심이 바로 중앙은행과 금융감독기구 개편법안의 통과여부이다.
관계기관 직원들이 작성한 성명서 요지를 전화로 전해듣고 사제관계 등 순수한 마음에서 서명해준 경제학 교수들도 금융개혁의 방향에는 이의가 없으리라고 본다. 재경원과 한국은행의 양심있는 인사들도 동의한다고 듣고 있다. 아무리 정치산술에 민감한 정당들이라도 이번만은 대승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 실패하면 여야구분 없이 국민경제를 망친 책임을 져야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우리국민은 빨리 혼란스런 꿈에서 깨어나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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