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년 북송사업이 시작된 이래 「조선인」 남편을 따라 북한에 건너간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1,831명의 일본인처. 그중 15명이 지난주 우여곡절 끝에 수십년만의 고향을 찾았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북송 교포와 남북 이산가족의 한과 슬픔을 알고 있는 기자로서는 왠지 부러운 마음으로 이들의 귀향을 지켜보게 됐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들의 귀향은 씁쓸한 뒷맛만을 남기고 끝났다.일본인처들을 맞는 일본가족들의 모습은 매우 생소하게 느껴졌다. 이들은 수십년만의 혈육상봉이라고는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맹숭맹숭」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남북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감격적인 장면이 아직도 머리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터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더욱이 일본인처중 몇명은 끝내 일본의 친족들로부터 만남을 거부당했으며 「떳떳하게」 친족과의 면회가 공개된 일본인처들도 4명에 불과한 것을 보면 그 분위기를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처럼 「이상한 상봉」에는 물론 복잡한 전후사정과 배경이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의식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상봉을 거부한 가족들의 대부분은 북송당시 멸시와 차별을 받았던 조선인과 결혼한 일본인처들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같은 심정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가족들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인처들에 대해 더욱 연민의 정을 느꼈다.
이번에 고향을 방문한 일본인처들은 북한 체제에 순응하는 소위 「엘리트」답게 일본에서 한치의 자세도 흐뜨러트리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부모의 묘앞에서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와 하염없이 울다가도, 오랜만에 재회한 혈육들과 감격적으로 포옹하다가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애써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일본에서도 북한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일본인처들. 이들은 단지 북·일간의 정치적 협상을 위한 제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수십년만에 만난 가족을 뒤로하고 비행기에 몸을 싣고 기약없이 북한으로 돌아가는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도쿄>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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