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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께서는 지금…(동창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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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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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씨의 국민회의와 김종필씨의 자민련이 손을 잡고 마음을 하나로 묶어 야권의 단일후보를 내기로 완전 합의를 보았다는 사실을 각하께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87년 대통령선거때에는 당시 야당의 거두이시던 두 김씨가 서로 대통령후보가 되겠다고 싸우다 마침내 한 김씨가 고향에 가서 딴 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야당이 갈라져 두 후보가 동시에 출마하고 참패를 면치 못했습니다. 그 분열때문에 노태우씨가 전두환씨의 뒤를 이어 청와대의 주인이 되어 5년의 영광을 누렸고 지금은 형기 17년 6개월이라는 긴 세월의 곤욕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 각하께서는 또 다른 김씨에게 대통령후보 자리를 양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5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김씨 한 사람이 다른 김씨에게 대통령후보 자리를 양보할 수 있었으니 훌륭한 일이 아닙니까. 『안 될 것이 뻔하니까 양보했겠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만 볼 수는 없지요.

그렇다면 13대때 동시 출마했던 두 김씨는 두 사람이 동시에 당선된다고 믿고 출마한 것이겠습니까.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서야 어떻게 당선을 확신하고 출마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합공천은 야합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권력 나눠먹기』라고 비난을 퍼붓는 이들도 있는데 그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비난이라고 여겨집니다. 솔직히 말해서 권력을 혼자 먹는 것이 민주적입니까, 권력을 나눠 먹는 것이 민주적입니까.

장차 민주주의를 정치에 실현하겠다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남이 권력을 나눠 가지건 나눠 먹건 비난해서는 안 될 것이고, 오히려 권력을 혼자 먹겠다는 사람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호남출신의 대통령후보를 옹립하면서 자민련은 마땅히 「지역감정 해소」의 애드벌룬을 높이 띄웠어야 하리라고 믿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박정희씨가 집권하면서부터 영남출신이 크게 등용되고 호남출신이 소외된 사실을 아무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박정권의 초대 정보부장과 납치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본인이 1997년에 손을 잡았다는 것은 민족화합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큰 의미가 있다고 풀이할 수도 있겠습니다.

자기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해도 그 시대의 정권을 대신하여 저쪽에서 사과의 악수를 청한 것이고, 그 손을 잡았다는 것은 이쪽에서 그 때 일을 용서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선 승리후 99년의 내각제 개헌이나, 자민련이 국무총리를 내고 국무위원의 반수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나 모두 어느 김씨도 확실하다고 믿지 않을 것이지만 야권의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진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각하, 대통령선거를 1개월쯤 앞두고 유권자인 국민을 위해 각하께서 꼭 푸셔야 할 숙제가 하나 있습니다. 야권 후보가 하나가 됐으니 여권의 후보도 한 사람만 나오게 하셔서 국민의 판단이 그릇되지 않도록 해주시는 일입니다. 세 사람의 후보란 투표해야 할 사람들에게는 망설임을 더하게 하고 그 결과도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믿습니다.

각하, 오늘 뿐이 아니라 내년 2월까지는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개인은 뭐니뭐니 해도 각하 한 사람입니다. 임기중에 그리고 한달 이내에 꼭 하나 만드셔야 할 작품은 여권후보 단일화가 아니겠습니까. 매우 중대하고도 뜻깊은 작업이라 사료됩니다.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는 지난번 TV토론에서 『이인제 국민신당후보가 돌아오면 받겠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하였고, 관록있는 정치인으로 신임을 받는 김덕룡 의원도 이인제 후보에게 사퇴하고 당에 복귀할 것을 권유했다고 전해집니다.

때는 무르익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정치인으로서의 각하의 마지막 작품을 기대합니다.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를 점심에 청와대로 불러 칼국수라도 한 그릇씩 대접하면서 손을 잡게 하셔야지요. 두 사람이 합심하여 대선을 치르게 되지 못하면 각하께서는 차마 대통령의 자리를 물러날 수 없다고 잘라서 말씀을 하세요. 여권 단일후보가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국제회의에는 국무총리를 대신 보내시고 발등의 불부터 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각하,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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