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됐던 한반도 4자회담 본회담이 북한의 태도변화로 내달 중순에 열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북한의 태도변화란 지금까지 견지해 왔던 주한미군철수를 본회담의 의제로 하자는 것과 본회담에 앞서 대규모 식량지원요구를 철회할 뜻을 전해 온 것이다. 따라서 오는 21일 뉴욕에서 3차 예비회담을 개최, 일정 등 회담준비사항을 논의한 뒤 내달 중순 제네바에서 본회담을 열 것으로 보이지만 과연 회담이 어느 정도 순탄할 것인지는 미지수다.남북한과 미국·중국의 4자회담은 1995년 4월16일 한미양국 정상이 제주도에서 만나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체제를 강구하기 위해 갖자고 함께 제의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검토중」이라며 오랫동안 시간을 끌다가 설명회를 요구했고 이어 4개국 예비회담도 두 차례나 열린바 있다. 북한은 그동안 미군철수를 본회담의 의제로 삼고 미국과 직접 평화협정을 보장해야 하며 회담분위기의 조성을 위해 회담전에 대규모 식량지원을 요구해 왔었다. 그러나 한미양국은 의제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모색」 등 포괄적으로 해야 하고 식량지원은 결코 회담의 전제조건이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회담과 인도적인 차원의 식량지원은 엄연히 별개문제인 것이다.
근 두달만에 4자회담 가능성에 파란불이 켜진 것은 북한이 「미군철수의 의제」주장과 식량지원요구를 철회한 것도 그렇지만 사실은 미국과 북한의 실리계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일일이 흥정하기보다 북한을 4자회담의 틀안에 끌어들여 협상하고 남북한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선거전에 회담을 성사시켜 한국도 틀안에 함께 끌어들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북한이 적극성을 보인 것은 더 많은 식량확보와 대외 이미지개선 때문인 게 분명하다. 김정일은 당총비서취임후 회담참가 등 유연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는 물론 한미양측에게서 막대한 식량을 지원받고 미국으로부터는 무역제재완화와 관계개선 등 각종 실리를 얻어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의 새정부출범에 앞서 4자회담을 성사시켜 혹시나 있을지 모를 대북 강경정책을 사전견제하려는 의도도 포함돼 있다.
우리로서는 새로운 평화장치를 마련하겠다는 4자회담이어서 성사는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앞날은 험난하다. 새로운 평화 합의가 수개월 걸릴지 몇년 계속될지 예측불허다. 또 북한이 고비마다 무슨 해괴한 요구로 회담을 교란, 중단시킬지도 모를 일이다. 때문에 4자회담이 곧 평화협정을 낳고 또 빠른 시일안에 남북직접회담이 성사되면서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흥분과 기대는 금물이다. 냉정한 자세로 북한에 대해 대화의 장으로 나와 개방·개혁을 하지 않을 경우 고립끝에 스스로 붕괴된다는 점을 강조, 공존공영에 동참할 것을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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