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두 잠들고 나면 고양이들의 세상이 된다는 걸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밤 늦은 시간, 언덕길을 걷다가 문득 이상한 예감에 놀라 눈을 흡뜨면 거기 화단 한 구석에서 노란 헤드라이트 같은 불빛을 발견할 수 있으니, 심야에 외출 나온 고양이님이시다. 인간이 잠든 세상을 고양이가 지킨다! 그러나 요즘의 고양이들은 늘씬하지도 재빠르지도 않고 쥐를 잡지도 않는다. 먹을 것이 너무나 넘쳐난 때문일까? 뒤룩뒤룩 살이 쪄 있으며 느릿느릿 어슬렁거리는 것이 게으른 「자본가」를 닮은 것같다(물론 요즘 세상에 게으른 자본가가 어디 있을까마는). 말하자면 고양이들도 나태와 풍요에 푹 길들여져 있으며 먹이를 찾아 맹렬한 투신을 감행하지 않아도 살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잠든 밤, 옛 시절의 딱딱이 야경꾼처럼 심야의 외출을 감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서 고양이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도 풍요에 익숙한 나머지 「가난」을 잊어버린 우리들 얘기를 하고 있다. 고양이들이 저 모양이 된 것은 우리들을 닮아서이다. 지금 국토의 남쪽은 소비의 왕국이 되어가고 있고 국토의 절반은 빈곤의 왕국이 된 지 오래다. 나는 몇년 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을 때 그 안에도 먹을 것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재소자들이 먹다 남긴 음식물이 각 사동마다 넘쳐났다. 쥐들은 느릿느릿 살쪄 있고 사람을 봐도 무서워하지 않고 게으르고 굼떠서 새로운 음식을 던져 줘도 천천히 눈길을 돌렸다.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적당한 결핍은 필요하다. 소비가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짐승에게도 산천초목에게도 악덕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검소하고 절약하며 근면하며 운동하는 사회! 우리에게는 지금 그런 유산소들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이 시에서 표현한 「들고양이들」도 말하자면 풍요의 자식들이다. TV를 켜기만 하면 나오는 그 거만하고 자신만만하며 대신 아무것도 모른다는듯한 얼굴을 한 그 신세대들! 그러나 시를 읽는 것은 「자유」이고 각자의 상상력에 맡기고 싶다. 필자가 굳이 「가족」이란 제목을 붙인 점에만 유의해 주신다면….<시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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