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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회귀(김성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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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회귀(김성우 에세이)

입력
1997.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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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모든 것이 없었던 일로 되어가고 있다. 결국은 한발짝도 나아간 것이 없다. 실컷 뛴다고 뛰어온 것이 둘러보니 제자리다. 이런 것이 오늘의 우리나라 위치다.대선정국의 혼돈도 따지자면 여기서 파생된 것이다.

우선 3당통합의 해체과정이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다.

1990년 2월의 민정·민주·공화당의 3당통합은 당시 여소야대의 판도로 표류하던 정국을 구제하고 평민당과 함께 4당체제가 안고 있던 지역성과 사당성을 타파하자는 것으로 민자당이라는 거대한 여당의 출현은 하나의 정치혁명이라고들 했다. 그런 현실적인 요청과 명분에도 불구하고 합당은 기실 92년 대선을 향한 이몽들의 동상이었다. 92년 대선의 결과는 김영삼 전 민주당총재의 전리품이 되었다. 이겼으면 어차피 제살이 되지 않을 살들끼리 맞붙이고 있을 것 없다. 김종필 전 공화당총재가 일찌감치 쫓겨나다시피하여 자민련으로 떨어져 나갔다. 다음은 민정계 차례다. 사실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는 그 직접적인 동기가 구민정당 세력의 신당설에 자극된 것이었다. 민정계를 무주화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대통령의 임기가 거의 다되고 정권재창출의 가망이 없으면 합당의 용무는 끝났다. 통합된 3당이 도로 분해중에 있다. 요즘 여권의 분열과 당내 분규는 이런 움직임의 표현이다.

마침내 3당통합의 상속자인 신한국당마저 퇴장하게 되었다. 김대통령의 무서운 파괴력은 결국 마지막에 와서 자신의 소속당까지 파괴하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은 낙하산으로 탈출하듯 당적이탈을 선언했다. 그 파괴의 굉음이 지금 온 나라의 유리창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원상으로 복귀하는 것은 4당체제도 마찬가지다.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새로운 4당체제가 굳혀졌다. 3당이 통합하던 당시와 같다. 4당체제는 자칫하면 그때처럼 여소야대를 낳기 쉽다. 사실 이번 대선에서 DJT연대가 승리한다면 당장 여소야대가 된다. DJT의 의석이 개헌선 확보는커녕 과반수에도 못미친다. 또 한번 정국은 표류할 수 밖에 없다. 이 또한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다.

역사의 회귀는 이뿐이 아니다.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김현철씨가 최근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현정부의 최대비리로 지목되었던 한보사건과 김씨사건은 구속기소된 14명중 9명이 집행유예나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다. 금년 들면서 국가적 위기로까지 치닫게 했던 사건들이 해를 채 넘기기도 전에 거의 유야무야 되어간다.

현정부의 최대업적이라는 금융실명제만해도 그렇다. 신한국당 자신이 전면재검토를 하겠다 하고 DJT연대는 자민련의 완전폐지 주장과 국민회의의 보완입장이 절충중이다. 재계에서는 즉각 유보를 촉구하고 나섰다. 다음 정권에서는 실명제가 실명할 위기에 놓여 있다.

전대미문의 대심판으로 온나라를 소용돌이속으로 몰아 넣은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것 또한 신한국당이 민주당과의 통합이전부터 당의 강령에서 삭제하기로 했고 구속된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여야가 모두 앞장서서 찬성하고 있으니 당초의 서슬은 빛바래졌다.

역사가 되돌아가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조금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현정부는 들어서자마자 개혁을 소리높이 외쳤지만 바뀐 것은 쇠잔해진 그 외침의 목소리뿐, 개혁된 것이 없다. 부정부패 등 한국병은 그대로 남아 있다. 비자금도 대선자금도 도로 매몰되어 버렸다. 이 나라가 이 정권동안 전진한 것이 무엇이며 진보한 것이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우리 역사가 답보하고 있는 것은 3김시대의 지루한 연속이다. 역사가 3김의 수렁에 빠진채 너무나 오랫동안 질척거리며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선도 그 연장선상이다.

참으로 무위의 역사였다. 아무 힘도 안들인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국력의 낭비가 있었다. 과거만 뒤돌아보다가 뒷걸음질 치거나 기껏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역회전의 역사였고 지우개의 역사였다.

이번 대선의 희한한 판국은 그 역사의 역리들이 서로 얽히고 충돌하면서 나타난 것이다. 동시에 우리나라가 전진하는 역사의 진운있는 나라로 전환하느냐 마느냐의 여부도 이번 대선의 결과에 달렸다.<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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