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둘째 딸 타치아나(애칭 타냐) 디아첸코는 크렘린에서 실세중의 실세로 꼽힌다. 대통령의 이미지 담당 보좌관이 그의 공식 직함이지만 「아버지와 딸」이라는 혈연관계로 형성된 「보이지 않는 힘」을 바탕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각종 민원을 담은 편지가 하루에도 수십통씩 그에게 쇄도하는 것을 보면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그 많은 편지 가운데 한 통이 최근 언론에 공개돼 작은 화제가 됐다. 보낸이는 모스크바에서 300여㎞ 떨어진 툴라의 지방자치단체장(시장)선거에 출마한 니콜라이 마트베에프 후보. 그는 91년 구소련의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선거에서 옐친 후보의 당선을 위해 사재를 털어 앞장섰던 옛 일을 거론하며 범크렘린 차원에서 자신의 시장당선을 도와달라고 요구했다.
그의 편지가 공개되자 정계 일각에서는 『또 그사람…』이라는 첫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그가 정계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는데 이론은 없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그는 전형적인 「정치꾼」에 불과하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 「정치의 계절」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나타나 정치적 도의나 신념을 팽개치고 야합하고 정치판을 휘젓는 데 익숙한 그런 인물이다.
옐친 진영에 가담했던 그는 96년 6월 대선을 앞두고 느닷없이 알렉산데르 레베드 전국가안보위 서기에게로 돌아서 「레베드를 크렘린으로」라는 홍보물을 제작해 돌렸다. 그 해 가을에는 레베드 전서기―추바이스 제1부총리 연합세력에 의해 권부에서 밀려난 알렉산데르 코르자코프 전 대통령 경호실장에게 툴라지역의 의회 보궐선거 출마를 권유했다. 공교롭게도 코르자코프 전 실장이 보궐선거에서 승리, 정치적 재기에 성공하자 마트베에프는 스스로 「코르자코프의 정치적 대부」라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그의 정치판 행적은 궁극적으로 「툴라시장의 꿈」을 이루기 위한 빗나간 과정의 하나였다.
그의 편지는 「정치의 계절」을 맞아 대선이후의 보장이나 반대급부, 정치생명 연장 등을 위해 이곳 저곳 기웃거리는 우리의 정치인들을 생각케 한다. 이번 대선에는 부디 『또 그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마트베에프와 같은 정치꾼들만은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모스크바>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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