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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념 기아그룹 회장/“기아 3자인수는 없습니다”(한국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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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념 기아그룹 회장/“기아 3자인수는 없습니다”(한국인터뷰)

입력
1997.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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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기술력 불구 판매·자금력 취약 내부혁신 불가피/직원·소비자 참여 ‘사외이사제’ 도입 국민기업 거듭날터기아그룹이 부도유예협약 적용(7월15일)이후 5개월간의 혼돈과 진통을 마무리짓고 정상화를 향한 힘찬 새출발에 나섰다. 기아의 법정관리인으로서 기아임직원들로부터 회장에 추대된 진념 전 노동부장관은 취임식에서 「제3의 창업」을 선언했다. 항간에 나돌던 제3자인수설 등을 일축하고 기아자동차가 국민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이다. 정통파 경제관료에서 경영인으로 변신한 진회장은 취임이후 정력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행보를 펼쳐 기아정상화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이고 있다. 회장 취임 일주일을 맞은 13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 기아회장으로서의 각오등을 들어봤다.<편집자 주>

□대담=이종재 기자

―기아사태는 상당기간동안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밖에서 본 기아와 취임후 직접 느끼는 기아가 어떻게 다릅니까.

『기아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자금이 제대로 안돌아서 생긴 문제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기아특수강의 경우 공장은 무척 좋은데 기술진의 욕심 때문에 투자를 지나치게 했습니다. 더구나 장기자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단기자금으로 공장을 지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책임을 맡기 전에는 기아를 염두에 둘 겨를이 솔직히 없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둘러보니 기아가족 모두 재건을 위해 열심입니다. 회사부터 살리자는 분위기가 넘쳐 있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정통 관료 출신으로 기업경영은 다소 생소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더구나 어려움에 처한 기업을 경영해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나름대로의 비교우위를 살리겠습니다. 나라경영이나 기업경영이나 목표는 다르지만 바탕은 같다고 봅니다. 21세기 경영은 인적자원이 결정합니다. 전 임직원들이 보람을 느끼고 신바람나게 일하도록 하면 경영자로의 할일은 하는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그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기아가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 무엇부터 하실 작정이십니까. 기아의 노사관계나 인력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기아의 회생여부는 기아내부의 문제입니다. 가족주의나 온정주의의 기업문화도 좋지만 너무 지나칠 경우 냉혹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경쟁은 국내기업끼리 이루어졌으나 이제는 무한경쟁시대입니다. 온정주의만으로는 경쟁에서 이겨낼 수 없습니다. 철저한 신상필벌의 원칙이 세워져야 합니다. 조직관리가 잘된 기업에서는 내부에서 물갈이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내부에 없다면 수혈해야지요. 50년 축적된 기술을 갖고 있지만 판매와 자금면에서 취약한 것이 기아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좋다고 하더라도 고객이 사주지 않으면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제품은 타이밍이지요. 좋은 차를 알리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기아의 문제는 판매와 자금의 문제였으며 기술진이 관리한 데 따른 결과입니다. 내부의 전반적인 혁신과 변신을 위한 노력도 없었습니다』

―김선홍 전 회장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김회장은 봉고신화를 이루고 기아의 100만대 생산체제를 구축한 자동차 전문인입니다. 자동차기술의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회장취임후 여러곳을 다녔습니다만 기아 창업주의 묘소에 들른 것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각들이 많습니다. 굳이 묘소까지 갈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기아는 김철호 선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두발 자전거에서 세발로, 세발에서 네발 자동차로 발전한 것이 기아라고 생각합니다. 기왕에 기아맨이 되려고 했으면 철저하게 기아맨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슨 일이고 역사의 단절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실 기아자동차 법정관리인으로 얘기나올 때 진심으로 오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단 기아에 몸담기로 한 이상 철저히 기아맨으로 살려고 합니다』

―강성노조가 기아 어려움을 초래한 원인중 하나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노사관계를 어떻게 해 나갈 작정이십니까.

『과잉투자와 자금 마케팅력의 취약성 및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 기아가 어려움에 처한 주원인이었으며 노사관계도 분명 하나의 원인일 것입니다. 노사관계는 기본적으로 강성이어서는 안됩니다. 취임이후 노조관계자들에게 기술 품질과 서비스로 살아나지 않으면 죽는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아의 장래는 채권단이나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기아 스스로에게 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주인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 기아는 회사가 살아나는 쪽으로 노사가 함께 나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어려움을 딛고 나서 더욱 힘을 얻는 역경의 효율을 생각합니다』

―법정관리인의 자격으로 기아자동차의 제3자인수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은 너무 단정하는 것 아닙니까.

『기아자동차를 제3자에게 인수시키지 않는다는 약속을 정부와 채권단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재차 얘기하지만 기아를 제3자에게 인수한다면 제가 여기에 올 이유가 없습니다. 자생력이 있습니다. 기아자동차를 전문 자동차업체로 바로 세우는 것이 본인의 임무입니다. 아시아자동차문제는 다소 진의와 다르게 알려졌습니다. 기본적으로 기아자동차를 살리기 위한 채권단의 방침에 동의합니다. 무작정 아시아자동차의 매각을 반대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채권단과 합의해 기아에 도움이 되도록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채권단쪽에서는 기아 농구단의 매각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이는 충분히 논의해 기아가족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할 것입니다』

―기아는 전문기업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국민의 애정을 받아왔습니다. 국민기업으로 키우겠다고 밝히셨는데 구체적인 복안이라도 있는지.

『곧 경영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기 위한 전단계입니다. 내년초에 정식으로 사외이사제가 도입될 것입니다. 사외이사는 직원도 추천하고 소비자대표도 추천해 다양하게 구성할 것이며 경영의 투명성을 위한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활동할 것입니다. 대표적인 전문경영인 기업으로의 이미지를 살리고 국민기업화해 나갈 것입니다. 이름을 걸고 기아를 살리겠습니다』

―진회장은 전형적인 정통관료입니다. 현 경제를 어떻게 평가하며 해결방안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노코멘트』라고 입을 뗀 진회장은 최근 모 강연회에서의 강의내용을 소개했다) 『요즘 축구가 화제이지요. 축구를 잘하려면 어느 한 분야가 잘해서 되지 않습니다. 선수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또한 스스로 자질과 능력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선수라 하더라도 좋은 감독과 코치가 있어야 빛을 냅니다. 감독이나 코치는 전술과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선수들의 체력과 컨디션을 봐서 전략과 전술을 결정하고 상대를 파악해야 합니다. 동시에 선수들이 신나게 뛰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지요. 국민들의 열성적인 지원도 물론 필요합니다』

―그동안 경제부총리 하마평에 자주 오르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아회장을 맡는동안 입각제의를 받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서 기업에는 절대 안 나가려고 했습니다. 학교강의에 전념하겠다는 생각에서 공무원 생활중에 학위도 받아뒀지요. 기업에 나가서 비교우위가 크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 였습니다. 그래서 기아관리인 제의도 수차례 사양했으나 주위에서 강력히 추천했고 기아는 기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문제라는 판단에서 책임을 맡기로 했습니다』

―오는 20일 한국종합전시장(KOEX)에서 열리는 오토페스티벌에 큰 각오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아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날 행사에서 기아의 신차를 대거 내놓고 새출발하는 기아의 모습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진회장은 이 말과 함께 주먹을 힘껏 쥐고는 『새출발합니다. 국민과 함께 하겠습니다. 11월20일 KOEX에서 만납시다』고 외쳤다)

□약력

▲40년 전북 부안 출생 ▲전주고·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62년 14회 고등고시 행정과 ▲82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실장 ▲83년 경제기획원 차관보 ▲88년 해운항만청장 ▲90년 재무부차관 ▲91년 경제기획원 차관 ▲91년 동력자원부장관 ▲94년 미 스탠퍼드대 교환교수, 전북대 객원교수 ▲95년 노동부장관 ▲부인 서인정(50·성신여대 음대교수)씨와의 사이에 1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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