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발굴은 1천3백여년간 땅속에 묻혔던 백제 역사를 땅위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을만큼 고고학적으로 의미있는 일이었다. 경주 고분군이나 고구려 어느 고분에서도 이 왕릉처럼 누구의 무덤이라는 분명한 지석이 나온 경우는 없다 한다. ◆71년 6월29일 발견된 이 왕릉 발굴에는 화제가 많았다. 당시 공주박물관장은 멧돼지에게 쫓기는 꿈을 꾼 다음날 우연히 능을 발견했다. 일제때 도굴된 능을 보존하기 위한 배수로 공사중이었다. 그로부터 3일 뒤 시작된 발굴작업에서 제일 먼저 나온 유물은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멧돼지 석상이었다. ◆발굴단장이었던 고 김원룡 선생은 만년에 입버릇처럼 『무령왕릉 발굴은 내 잘못』이라고 고백했다. 몇달 몇년을 두고 조심스레 했어야 할 발굴을 높은데 보고에 쫓겨 이틀만에 끝낸 데 대한 후회였다. 출토 장신구류를 살피던 박정희 대통령이 『이게 순금인가』 하며 금팔찌를 휘어볼 때는 아찔아찔했다는 일화도 털어놓았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 3권에서 이 왕릉 출토유물중 매지권에서 가장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석에는 백제 무령왕이 돈 일만닢으로 토왕 토백 토부모에게 보고하고 남동향의 토지를 사들여 무덤을 쓴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제왕도 자연 앞에서는 이렇듯 경건하게 예의를 갖추었다. ◆문화재관리국이 더 이상의 훼손을 막기 위해 무령왕릉을 영구폐쇄키로 한 결정은 늦었으나마 다행한 일이다. 습기와 곰팡이를 막아 보겠다고 서투른 공사를 하다가 석굴암처럼 망쳐 버린다면 자연 앞에 그토록 겸허했던 피장자의 뜻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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