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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 필름 페스티벌(시네마 뉴웨이브: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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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 필름 페스티벌(시네마 뉴웨이브:8)

입력
1997.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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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 반기 ‘악동영화’ 개척/낭만대신 폭력·동성애 등 다뤄/89년 ‘섹스,거짓말…’로 주목/신예감독·실험작 배출 기염다수에 의해서 지배되는 주류문화는 권위적일 뿐 아니라 날로 진부해진다. 반면 문화와 예술의 순수성을 지켜온 것은 대부분 소수문화의 몫이었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의 발명이래 견고하게 지속돼 온 할리우드의 상업영화 시스템은 대중의 꿈과 환상을 자본과 연결시켜 무한한 이윤을 창출해냈다. 그러나 예술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해 낸 것은 메이저 시스템이 아닌 독립영화와 저예산영화들이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69년 선댄스 키드로 출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Buchi Cassidy & Sundance Kid)」의 제목을 딴 선댄스영화제는 「개미군단」을 뉴웨이브의 주역으로 이끌었다.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리던 유타영화제를 로버트 레드포드의 선댄스재단이 흡수해 탄생시킨 85년의 첫 선댄스영화제는 대상수상작으로 코엔 형제의 데뷔작 「블러드 심플」을 선정했다.

독립영화계의 기수로 코엔 형제의 활약을 기억한다면 선댄스의 안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88년까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선댄스영화제는 89년 세계적인 히트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를 낳음으로써 변신의 계기를 마련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경이로운 데뷔작은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 칸에서 그랑프리를 거머쥐었다. 이 영화는 명예뿐 아니라 흥행에도 성공, 선댄스를 영화장사꾼의 새 개척지로 주목받게 만들었다. 이후 「저수지의 개들」의 쿠엔틴 타란티노(92),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엘 마리아치」 등 히트작에 이어 할 하틀리, 토드 헤인즈, 그랙 애러키 등의 실험작이 쏟아지면서 선댄스의 명성은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선댄스의 영화는 꿈과 낭만, 해피엔딩을 기조로 하는 할리우드영화에 반기를 들고 싶어한다. 당연히 사회에 대한 우울한 전망을 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피가 철철 흐르는 폭력과 마약, 섹스, 동성애 등은 「선댄스표」 영화의 주 소재였다. 미국 및 유럽의 주류 영화마저 포용할 수 밖에 없었던 이런 흐름은 현대 영화의 뉴웨이브로 일컬어지는 「악동영화」의 새 전통을 만들어냈다.

최근 선댄스영화제도 새로운 주류로 흐를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을 받는다. 영화제가 열릴 때면 일확천금을 노리는 영화업자들이 몰려들어 흥행에 성공할 영화를 고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권위적으로 변해가는 선댄스를 비웃는 「슬램 댄스」영화제 등이 잇달아 열리며 「원조」 독립영화제임을 부르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댄스의 정신은 예측할 수 있는 걸 부정하려는 노력이다』라는 말이 있듯, 아직 선댄스가 가난한 영화인들의 꿈의 잔치라는 희망은 유효하다.<이윤정 기자>

◎내가 본 선댄스/폭력과 일상,양극의 조화

선댄스 키드의 특징은 두 가지다. 광포한 육체적 격돌과 범상한 생활의 기록, 상상의 모험과 세속의 관찰, 즉 폭력과 일상성. 전자가 장르의 첨탑이라면, 후자는 현실의 바닥에 내려가 가재도구처럼 소소한 생활의 모습을 훑어가는 일상의 여행이랄 수 있다. 하나의 영화제에서 자아가 세계와 대립하는 극과 극의 양상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광기, 냉소,키치적 감성의 양식미는 전자의 뒤에 바짝 붙어 있는 지지자들이다. 확실히 선댄스영화제 출신 감독의 다수는 악동의 티가 난다. 피투성이 코미디의 대가 쿠엔틴 타란티노, 추리게임의 재담가 브라이언 싱어, 그 뒤를 잇는 할 하틀리, 그랙 에러키 계보가 말해주듯 선댄스의 주류는 파괴적이고 장난스러우며 도발적이다. 왜 이런 장난을 칠까?

갱스터나 서부극이 그렇듯 장르는 역사에서 시작하여 탈역사의 공간에서 완성된다. 위의 감독들이 붙잡고 시비하는 대상은 여기다. 장르의 게임틀을 데리고 놂으로써 탈역사라는 장르의 역사를 한번쯤 멀찌감치 떨어져 되돌아 보게 하는 것.

일상, 리얼리즘적인 현실탐색의 흐름도 이에 못지 않게 폭이 크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의 스티븐 소더버그를 비롯해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의 토드 솔론즈, 「맥멀렌가의 형제들」의 에드워드 번즈, 「일요일」의 조나단 노시터로 이어지는 이 느릿느릿한 존재의 시간은, 얼핏 평평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사실 앞에서 말한 영화들의 폭력적 양상보다 결코 충격이 덜가지 않다. 상존하는 지상의 고독과 절망이 허허롭게 떠있는 또다른 허공의 풍경인 것이다.<김정룡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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