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그룹이 화의와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지난 1일. 일부 종합금융사들은 부랴부랴 해태지원을 위한 회의를 소집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태측 관계자는 『그 사람들, 돈빼갈 땐 언제고 이제와서…』라며 체념과 원망을 내뱉았다. 은행쪽에선 『종금사로 고스란히 돈이 빨려들어가는 한 더 이상 지원을 할 수 없다』며 제2금융권을 겨냥했다. 또 『뭐든지 팔아서 자구책을 마련하겠다고 해놓고선 뒤에선 딴소리를 한다』며 해태에도 강한 불신을 내비쳤다. 종금협회 관계자는 『종금사들의 여신회수액은 500억원대에 불과하다』며 은행이 손을 빼기 위해 종금을 탓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호불신속에 결국 해태는 좌초하고 말았다.닷새뒤인 지난 6일. 종금사들의 1,500억원 지원이 결정됨으로써 해태는 침몰을 면하고 항해를 계속하는 기적을 맛보게 됐다. 해태측의 종금사 관계자들에 대한 호칭이 「그 사람」에서 「그 분」으로 바뀌었다. 박건배 해태그룹회장이 『점퍼를 입고 죽을 각오로 뛰겠다』고 하자 종금사들은 『자구의지가 매우 강하고 회생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은행들도 『당초 해태를 살리자고 했던 것은 우리였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같은 상황급변은 보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가능성 있는 기업을 살리고 공멸을 피해야 한다는 판단은 왜 진작에 나오지 못했을까. 기업은 왜 일찌감치 정상화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을까. 상대가 핸들을 꺾을 때까지 마주보고 달리는 「치킨 게임」만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었던 것일까.
여하튼 우리 경제의 신뢰지수는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분명한 것은 한번 깨졌던 신뢰를 되살려보자는 시도가 또다시 무너질때의 충격파는 거대한 「신용공황」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안하는게 나았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할 책임은 당사자 모두에게 있다. 판단은 신중하게 하되 한번 한 약속은 지키는 것이 금융기관과 기업, 그리고 모든 경제주체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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