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의 합종연횡속 자주외교 성공하려면 합리적 전략목표와 경제력이 있어야한다국내에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대선정국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운명과 직결된 주변 대국들간에 의미있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세습 카리스마」의 한계를 메우려고 「유훈통치 3년」을 끌어온 김정일은 「추대」라는 변칙으로 총서기에 올라 한국의 대선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이번 미중 수뇌회담은 미소냉전후 세계지각변동을 예상케하는 역사적 만남이다. 중국 최고지도자가 국빈으로 미국을 방문한 것은 냉전말기의 리센녠(이선념)이래 12년만이며 동서냉전구조의 해체후 최초의 만남이란 점만 가지고도 주목할 만하다. 무릇 막대한 국민세금을 쓰는 국가원수의 외유는 이처럼 획기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 뭐니뭐니해도 21세기 동북아시아정세의 제1의 특징은 중국의 부상이다. 홍콩을 반환받은 중국이 경제규모에서 언젠가는 미국을 능가할지도 모른다는 상정은 놀라운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장기예측에서는 구매력평가에서 본 2020년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세계전체의 2할을 점하여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가 된다고 한다. 클린턴 미 대통령이 「중국은 21세기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러한 예측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장쩌민(강택민) 주석이 「미중관계는 중국의 발전과 세계의 평화에 직결된다」고 한 것도 세계질서형성에서의 중국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자의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물론 미국내에 특히 의회를 중심으로 중국비판이 만만치 않고 중국내에서도 미국의 간섭에 반발하는 민족주의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미국이 거대한 중국시장을 놓칠 리 없고 중국 또한 미국과의 협조없이 세계정치의 주역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평화를 비롯한 동북아의 안보문제는 미국과 중국의 관여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미중회담과 때를 같이하여 이루어진 러일 정상회담은 취약한 경제로 대국체면을 유지할 수 없는 러시아와 정치대국의 면모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일본이 동반격상하려는 만남처럼 보인다. 옐친 대통령과 하시모토(교본룡태랑) 총리는 북방영토문제의 해결을 명기한 도쿄(동경)선언을 기초로 2000년까지 평화조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한다는데 합의했다.
이번 합의로 일본이 북방영토를 반환받는다는 보장은 없으나 옐친 대통령의 결단이 일본의 대폭적인 투자증가를 염두에 둔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러일 정상이 경제협력의 추진에 합의한 것은 지금까지 북방영토문제에 발목잡혀 진척을 보지 못했던 러일경제관계가 크게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극동과 시베리아 자원개발에서 러시아는 일본의 투자에 크게 기대를 걸고있고 일본도 장래 아시아의 에너지수급의 안정이란 관점에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분야에서의 러일협력 추진이 금후 양국관계개선의 열쇠가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반세기 냉전사에서 볼 수 없었던 4강의 합종연횡을 목도하고 있다. 한국은 이처럼 급변하는 탈냉전의 외교무대에서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변화의 동인이 경제라는 것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 냉전시대 세계질서의 핵심요소는 이데올로기와 군사력이었으나 탈냉전시대의 외교관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경제력이다. 경제야말로 당근도 되고 채찍도 되기 때문이다.
그다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 4국이 입장과 농도에서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파국이나 전쟁을 수반하는 조기통일보다 중·장기적 평화통일을 바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제2차세계대전후 아니 역사상 처음으로 자주적 외교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고 볼 수 있다. 냉전시대에는 자주성을 주장할 수도 없었고 오히려 미국중심의 질서속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더 안전했었다. 그러나 이젠 자주의 환경이 주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자주외교를 강요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어느 외국도 우리 조국의 운명을 외교적으로 담보해 줄 수 없다. 자주외교는 합리적인 전략목표와 경제력을 갖춘 안정된 내정의 바탕위에서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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