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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교수 맞아요?/민용태 고려대 교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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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교수 맞아요?/민용태 고려대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7.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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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교수님 맞아요?』 텔레비전 프로그램 「숨은 양심을 찾아서」가 나가면서부터 수시로 듣는 말이다. 얼떨결에 나는 『예에, 거의 맞습니다…』로 얼버무린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요즘은 지하철에서 만나는 중고등학생까지 『민교수님, 교수님 맞아요?』하며 깔깔댄다. 과거에도 텔레비전에 많이 얼굴을 내비쳤지만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는 건 요즘이다.동료교수들도 『민교수, 교수 맞아?』하면서 나를 놀려댄다. 짓궂은 친구는 『민교수, 아직도 안 짤렸어?』하기도 한다. 기분 좋아 허허 웃다가도, 또 요즘 명예퇴직이니 정리해고니 해서 시끄러운데, 이러다가 진짜 어떻게 되는거 아닌지 걱정도 된다. 사실 상아탑에서는 내가 텔레비전에 나가 코미디언이나 탤런트들과 희희덕대며 웃는 걸 못마땅해 한다. 품위손상이라나….

나는 가끔 나 자신에게 『내가 뭐 별건데…』하며 충고한다. 포장마차에서 한 잔을 즐기다 보면 더러 귀찮게 다가오는 취객들이 있다. 아니면 길 가다가도 『저 치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놈이야』하고 무심코 내뱉는 소리를 듣는다. 때로는 제자들이 『선생님, 텔레비전에 그만 좀 나가세요』하기도 한다. 물론 그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멋있는(?)」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인기라고 하는 것이 교수에게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학문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긴 세월에 걸친 고독한 연구작업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가 더욱 많기 때문이다. 풍성한 자료와 깊은 연구, 거기에서 나오는 독창성이 연구자가 좇는 학문의 지표이다. 하지만 독창적인 연구를 금방 사람들이 알아보고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쉽게 알아보는 것이 독창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교수는 때때로 인기를 필요로 한다. 특히 학생 중심, 즉 수용자 중심적 교육행태로 바뀌어가고 있는 지금, 학습의 효과를 배가시키는데 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요소들이 퍽 중요하다. 옛날에는 재미있는 유머나 입담이 있어야 학생들이 졸지 않았다. 아니면 총각선생이라든가, 멋쟁이교수가 여학생을 모을 수도 있었다. 요즘은 매스컴시대인 만큼 학교외의 인기가 학생들의 학습열기에 절대적일 때가 있다. 밤낮 『공부해라, 공부해라』하는 학교분위기보다는, 사회적 관심이나 인기가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오빠세대」, 탤런트 지향적 꿈의 세대들은 스타를 만나는 기분으로 수업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그런 분위기에서는 강의내용에 관심을 두는 것보다, 교수의 외모나 사적인 사설에 더욱 흥미를 느끼는 역효과도 있지만….

사실 우리가 「교권」을 말할 때의 권위나 품위라는 것과 인기는 상반되는 면이 있다. 인기가 있으면 가깝게 하고 싶고, 친근하게 느껴지지만 권위나 품위는 높고 멀수록 더욱 값져 보인다. 「대권」을 그렇게 탐내는 것도 워낙 높고 큰 권력의 자리이기 때문이리라. 학문 또한 권위있는 저서나 학설을 지향한다. 강의 또한 믿을 수 있는 정설과 참신한 정보와 논리를 기저로 한다.

그러나 민주사회, 민주교육에서 그 권위라는 것이 누구에게서 나오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국민이 뽑듯이 그들의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듯이, 선생의 권위 또한 학생들의 자발적인 존경심에서 비롯되는게 이상이다. 이런 현상은 회사에서 간부들의 지도력에도 똑같이 일어난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말을 못알아 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지도층은 민주적 체제보다 가부장적 권위체제, 위에서부터 아래로 짓누르는 종적 권력 스타일을 권위로, 품위로 잘못 이해하며 살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그게 가장 편하고, 둘째 아직 우리의 인습이 그러했고, 셋째 남의 권리나 권위보다 내 권리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사실 『교수님, 교수 맞아요?』하는 유머는 교수의 권위를 깔아뭉개는 소리처럼 들린다. 웃지않는 교수, 엄숙한 훈장님의 귀에 이런 소리가 들리면 그 학생은 그 자리에서 몇 백대 곤장을 맞아야 하리라. 요즘 이래 저래 자리가 흔들리는데 이런 소리를 듣고 통쾌하게 웃을 사람은 많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데 한발 물러나서 다시 생각해보자. 얼마나 인간적으로 친근하게 느끼고 재미있었으면 이런 버르장머리없는 찬사까지 튀어나올 수 있었겠는가. 모든 예의와 허식을 저버릴 만큼 스승을 좋아하고 믿고 따르는 학생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는 희망이 있다.<서어서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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