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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을 읽으며/이기창 문화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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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을 읽으며/이기창 문화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7.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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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읽을 때 마다 스트레스가 더 쌓여!』 요즘 우리 사회의 풍경이다. 패거리 정치, 복지부동의 공직사회, 단군 이래 사상 최대의 경제위기…. 온통 우울한 소식뿐이다. 국민이 신명날 구석이 없다.혼탁한 사회일수록 조선시대 선비 최부(1454∼1504)의 올곧은 삶은 사표가 된다. 하필 이 시기에, 그것도 많은 이에게 낯선 그를 거론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중국표류기를 담은 「표해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성종 18년 제주도에 경차관으로 파견된 그는 이듬해 정월 부친상의 비보를 듣고 고향 나주를 향해 떠난다. 폭풍을 만난 그는 14일간 표류 끝에 중국 저장(절강)성에 표착한다. 최부 등 일행 44명은 약 5개월동안 중국대륙을 북상하는 8,000여리의 대장정 끝에 무사히 귀국한다.

표해록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일본 스님 엔닌(원인)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세계 3대 기행문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일보는 9월1일부터 매주 월요일 표해록을 연재하고 있는데 시리즈를 읽으면서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배우는 기쁨을 맛보곤 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최부가 공인의식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역경를 극복해가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상제가 상복을 벗음은 효가 아니며 남을 속이는 것은 신의가 아니네. 죽음에 이를지언정 어찌 효가 아니고 신의가 아닌 처신을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바르게 처신하고 그 다음 오는 일에 순응하겠네』(표류중 부하에게), 『일찍이 단군께서는 중국의 요임금과 나란히 나라를 세우고 조선이라 하였는데…』(중국 관리에게).

표해록에 담긴 최부의 국가관 도덕관 충효관은 시대를 뛰어넘는다. 조선의 엘리트 선비들이 그랬듯이 최부 역시 중화사상에 젖어 있었지만 표류를 계기로 주체적인 역사의식을 되찾는다. 타계한 「지리산」의 작가 이병주는 생전에 『표해록을 처음 읽게 된 것은 일본의 동양문고에서 발간된 것을 통해서였다』고 우리의 못남을 부끄러워했다.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많은이에게 표해록을 권한다. 정치인이나 공직자에게 더욱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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