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 절반 “공장 내놨어요”/은행들 추가담보 요구하며 대출회수 급급/사채시장서도 어음할인 안돼 현금없이 사업/“만성적 자금난에 파리목숨 운명” 자조『중소업체들의 운명은 파리목숨이나 마찬가집니다』
도시계획 등으로 수도권에서 밀려난 중소업체들이 대단위로 몰려 있는 인천 남동구 고잔동 남촌동 일대의 남동산업단지. 이곳에서 5년 넘게 자동차용 기계부품을 생산해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는 S엔지니어링 김모(37) 사장은 지난해부터 닥친 경기불황에다 옥죄어 드는 자금사정이 만성이 되어 이제 체념만 남았다.
김사장이 부품을 대는 대기업은 올해 초 갑자기 산업용차량 생산물량을 매달 150대에서 50대로 줄였다. S엔지니어링의 매출도 3분의 1로 떨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사장은 직원 인건비를 지탱하지 못해 임금이 많은 순서대로 5명을 내보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교대 작업을 할 정도로 바빴던 공장이 지금은 토·일요일을 쉬기가 일쑤다.
남동산업단지는 한국산업단지공단에 포함된 전국 산업단지 가운데 입주업체가 가장 많다. 산업단지 본부에 따르면 올해 10월 현재 단지내 업체는 입주 계약분까지 포함해 모두 3,000여개. 분양받아 자기 땅을 가지고 입주한 업체가 1,700여개고 임대공장이 1,300개 정도에 이른다.
단지에서는 불황 탓에 S엔지니어링처럼 사업규모를 줄이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임대공장 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올해 들어 영세 임대공장은 지난해 대비 20%정도 늘어나 88년 분양 시작 후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부도 등으로 쓰러져 경매에 넘어가는 바람에 휴·폐업하는 공장도 전국에서 가장 많다. 올해 들어 휴·폐업업체만 54개. 하지만 이 수치는 실제 부도를 맞고 상황이 끝난 후 집계된 숫자에 불과하다. 부도나기 직전까지는 대부분 기업이 『어렵다』는 소리를 감추기 때문에 도산이라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업은 훨씬 많다.
남동산업단지 경영자협의회 김문영 회장은 『올해만 단지 내 50여개 업체들이 부도를 맞았고 현재 거의 부도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업체들도 30∼40개에 이른다』고 말했다.
사정은 단지 주변에서 공장을 매매하는 부동산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더 심각하다. 남동산업단지 부근에서 공장과 상가를 주로 거래하는 한 부동산업자는 『단지 내 공장의 절반 정도는 사가겠다는 사람만 나오면 바로 팔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불황 등으로 수요자가 없어 실제 거래가 없을 뿐이지 공장을 팔겠다는 뜻이 있는 잠재 공급자는 남동산업단지에만 800개 안팎의 업체로 추정된다』고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중소업체들을 짓누르는 것은 자금난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원청업체들이 발행하는 어음이 3∼4개월에서 5∼6개월로 길어지기 시작했다. 올해 초부터는 대기업이 잇따라 쓰러지면서 어음을 할인할 데도 없어졌다. 몇몇 대기업 어음을 제외하면 은행은 물론이고 사채시장에서도 아무리 높은 할인율을 적용해도 어음을 현금으로 바꿀 수 없다. 직원 10명 정도의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한 업체 사장은 『받은 어음을 할인해 주지 않으니 그냥 쥐고 있다가 자재 대금으로 떠 넘기는 형편』이라며 『만원 한 장 없이 언제 휴지가 될 지 모르는 어음조각을 들고 사업을 꾸려 나간다』고 말했다.
은행의 대출 압박도 무시할 수 없다. 그동안 신용 거래했던 은행·종합금융회사들은 올해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일절 「에누리」가 없어졌다. 만기가 된 대출금을 갚으라거나, 추가 담보를 요구하는 금융권의 압박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태창금속 이선용 사장은 『은행 지점장들을 만나 사정을 이야기하지만 되돌아 오는 것은 「우리가 죽을 형편인데 어떻게 하느냐」는 대답 뿐』이라고 말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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