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운명에 대한 서늘한 성찰한 시인이 생리적 나이를 초월해서 시정신의 탄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형기 시인은 50년에 등단, 원로시인에 속한다. 그리고 그는 몇해 전부터 투병중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 활동하는 시인이다. 「현대문학」 10월호에 실린 이형기 시인의 시들은 이런 측면에서 그 「활동」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그의 시들은 도시적 일상성의 영역에보다는 삶에 대한 회오와 허무에 가 닿는 자기인식에 가깝다. 「병마용」이라는 시에서 그는 「죽은 황제/ 그 한줌의 흙먼지를 위해 충성을 다하려고/ 누구한테도 나올 수 없는 결단/ 장엄한 허무의/ 발진 명령을 기다리」는 「진흙으로 만든 불사의 군단 병마용」을 노래한다. 그리고 「귀머거리의 음악」에서는 「아무도 듣지 못하는 음악」을 듣는 「귀머거리 박수무당」이 등장한다. 이형기 시인 특유의 발랄한 낭만주의는 과격한 허무주의로, 다시 그것은 어떤 성스러움을 향한 탐색으로 나아가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술래잡기2」에서 보이는 바대로 그는 「필경은 나를 찾는/ 확실하고 허망한 이 술래잡기!」에 여전히 빠져있다. 그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향한 술래잡기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시인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시들의 앞에 붙어 있는 단상에서 시인은 「반드시 패배하는 사실이 필수의 대전제로 되어있는 싸움만이 시인의 도전의욕을 촉발한다」고 말한다. 시인은 현실적으로 혹은 제도적으로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싸움에 자기운명을 집중시키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가 동세대의 시인이었던 박재삼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쓴 시 「이름 한번 불러보자 박재삼」은 이런 맥락에서 시인의 운명에 대한 서늘한 성찰을 담고 있다. 「평생 시만을 써온 너의 계산법은/ 나도 시를 쓰지만 모르겠다/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던 시/ 그것이 이제는 먹지 않아도 배부른 황금빛 종소리/ 또는 바람의 장미꽃이 되어/ 너의 무덤 위에 찬란하고나」라고 한 시인의 죽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문학평론가·서울예전 교수>문학평론가·서울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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