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주도 학사행정 이젠 한계/특정분야 소질 학생 자유로운 선발 가능케 입시방식 대학 일임할때우리나라에는 통행금지가 엄격히 시행되던 때가 있었다. 폐지하자는 의견이 나올 때마다 이것이 풀리면 마치 큰 혼란이 올 것이라고 착각한 사람들이 아직 시기상조라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을 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도 30년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통행금지가 없어지자 밤 세상은 오히려 평온해졌다.
요즘 관 주도형으로 발전해 온 우리 경제가 한계점에 이르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관 주도형이 아니라 자율에 의해서만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도 경제분야와 마찬가지로 관 주도하에서 발전하여 왔다고 볼 수 있다. 모든 학사가 교육당국의 지침에 따라 시행됐고 교육당국의 지침은 혼란한 시기에 많은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해외토픽란에서 어린아이가 유명대학에 입학했다는 기사를 대할 때가 가끔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에는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다. 고등학교 졸업 학력 이상에 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한 학생이 아니면 결코 대학에 입학할 수 없다는 법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연주자 장한나가 한국 대학에 입학하였다면 세계적인 연주자가 될 수 있었을까. 세계적인 연주자가 아니라 창문에 「바이올린 개인교습」이라고 써 붙이고 평범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수능이 학생들의 학습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재능있는 사람을 평범한 사람으로 끌어내리는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재능있는 학생은 다른 방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이런 방법을 생각할 때가 된 것이다.
현재 특수목적고 학부모와 일반고 학부모, 예술고 학부모들의 갈등은 언뜻 보면 중등교육의 난맥상인 듯 하다. 그러나 중등교육이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해졌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며, 오히려 입학전형 방법이 다양하지 못한 데서 온 일시적인 혼란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입학전형 방식이 필요하다. 다양한 고등학교 졸업생들에게 고르게 기회를 주기 위해 각 대학은 독특한 입시전형을 개발해야 한다. 특목고의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과 일반고의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서로 다른 기준과 방법도 있을 것이고, 한 과목으로 한국 전체에서 우수성을 보이면 그 학생을 선발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은 각 대학에 일임해야 한다. 그래야만 21세기 인간형을 만들 수 있고, 국제경쟁력에서 이길 수 있는 인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과기처에 속한 과기대는 유일하게 과학고 2년 수료자도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대학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형평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아무도 항의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반대학에도 이것은 허용되어야 한다. 고교 2년생이라도, 혹은 더 어리더라도 한 분야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다고 인정된다면 각 대학이 자유롭게 입학을 허가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정부하에서 어떤 학교는 허가하고 어떤 학교는 안된다는 것은 법의 형평에 어긋난다.
인간의 재능은 한 가지에 치우쳐,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만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외적인 규제로 인해 그 뜻을 펴지 못하고 능력을 사장시키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인물의 앞길을 열어주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이 길을 터 주어야 한다. 자원도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비록 한 분야라도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에게 앞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러면 이들은 아마도 이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역군이 될 것이다. 지금 선동렬 선수와 박찬호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수학이나 국어를 얼마나 잘했는지 묻지 않는다.
다행히 교육부에서 이런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듯 해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다. 유행어처럼 퍼지고 있는 「자율화」가 법으로만 닫혀 있던 이 곳의 문도 조금씩 열고 있는 것이다.
대학 당국자들이 자율화를 원하는 것은 대학을 마음대로 경영하자는 것이 아니며, 또 교육부의 교육 목적을 무시하자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대학 입학제도의 통행금지도 풀려야 한다. 이것은 대학이 어떤 족쇄를 벗어 던지려는 것이 아니라 21세기에 한국이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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