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국민은 불안하다. 우리 사회의 어느 곳을 보아도 희망에 찬 환한 얼굴을 찾을 수 없다.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근본적 가치에 대한 합의가 흔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상황은 나아지기는 커녕 한숨만 나오게 하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를 이끌어 왔던 경제성장과 물질적 삶의 향상이라는 가치마저도 현실적으로 설득력을 잃어 가고 있다.정치인들의 작태가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도, 또 환율 변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 보통사람들의 마음은 그저 불안하기만 하다. 경제공황, 금융공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져 가고 있지만 현단계에서 진정 염려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바로 이런 심리적 공황상태이다.
심리적 공황상태는 현실의 불확실성이 사회적 합의와 체제에 대한 신뢰의 범위안에서 조절될 수 있는 상태를 넘어선 것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원래 불확실한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가 있다. 강요된 불확실성이 조절·통제 가능한 정도를 초과할 때 그 상황은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에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의 엔트로피(스트레스)를 가져온다.
이러한 극심한 엔트로피의 상황에서 우리의 대처방법은 크게 세 단계를 거친다. 그 첫번째는 부정이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그 두번째 단계는 분노이다. 그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 분노하며 특히 그 상황을 가져 온 원인과 과정, 책임의 소재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다.
마지막 세번째 단계는 체념이다. 그 상황을 숙명적인 것으로 수용하며 상황타개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이다. 이 단계가 되면 그 상황으로부터의 탈출 가능성이 대단히 낮은 구조가 정착될 우려가 있다.
우리 사회는 현재의 위기상황에서 부정의 단계를 지나 분노의 대처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의 논의조차도 냉정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마녀사냥과도 같이 들떠 있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그러나 아직 우리가 체념의 지경에는 들지 않았다는 것에서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이제라도 죽음의 순환고리에서 벗어나 상생과 공존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는 바로 이러한 방향전환이 필요한 것이며, 이에는 사회 지도층의 대오각성이 절실하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사회의 시스템을 합리적이고 시장지향적인, 그래서 공평하고 효과적이며 또한 효율적인 것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이야말로 다음세기의 한국을 지탱해 줄 체제이다. 그러나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체제를 떠받칠 제도적 장치들에 대한 논의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임이 명백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따를 수 있는 국가적 비전이다. 이것은 신바람의 진원지이며 역사의 현장에 있다는 뿌듯한 동참의식의 원동력이다. 우리 국민을 다 감싸안고 우리의 가슴에 불을 지필 그 무엇을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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