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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와 「건달」들/이병일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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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와 「건달」들/이병일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7.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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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빌 게이츠(Bill Gates)로 대표되는 마이크로소프트(MS)본사를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다. MS사는 「윈도95」로 상징되듯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소프트웨어업계를 리드하는 거인이다. 22년동안의 성장속도나 이룩한 업적은 기적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미국 시애틀 교외에 자리잡고 있는 회사는 하나의 커다란 공원이었다. 땅 덩어리가 넓은 미국의 공장이나 회사건물이 대개 그러하듯 모두 펑퍼짐하게 납작 엎드려 있는 건물들은 공원속의 비둘기집 같았다. 굴뚝마저 보이지 않아 회사라기 보다는 대학교 캠퍼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속에서 평균 연령 34.3세란 묘한 젊은이들이 내일을 향해 꿈을 열고 있었다. 놀랍게도 세상을 앞서 달린다는 이들의 외모는 너무 흐트러져 있었다. 말끔하게 정리된 환경과 돈벌이가 잘되고 있다는 이 회사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건달」들의 집단 같았다.

싸늘한 날씨인데도 반팔셔츠를 입은 사람, 청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사람, 운동복을 입은 사람, 머리가 등까지 내려오도록 기른 남자,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 모자를 쓴 사람등 정말 제각각이었다. 특히 머리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이를 보호하려는듯 모자를 쓴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각 개인의 사무실 안은 더욱 가관이었다. 각종 상자들이 컴퓨터와 어우러진 곳도 있었고 온통 종이가 널려 있는 곳도 있었다. 환경부터 독특해야 독특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인듯 했다. 정말 제멋에 겨워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MS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측 설명에 의하면 이들에겐 근무시간 개념이 희박하다. 회사측도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 어떠한 복장을 하든, 어떻게 근무하든 좋은 연구실적만 내놓으면 된다. 공상도 좋으니 멋대로 생각하고 연구실적을 올리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각자가 연구에 도움이 되는 엉뚱한 환경을 스스로 만든다.

자유를 누리되 연구실적으로 보답하라는 회사의 방침은 당연하면서도 어딘지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직후 부인이 남편으로선 「마이크로」(작고)하고 「소프트」(말랑말랑)하다고 재치있게 평한 빌 게이츠와 건달들이 이룩한 기발한 업적은 열거하기에 지면이 부족할 지경이다.

20세에 MS를 창업한 빌 게이츠를 22년만에 손꼽히는 갑부(350억달러)로 부상시켰고 주식을 배당받은 직원들도 하나같이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노력이 어떠했는 가를 살필 수 있다. 포춘지가 MS사를 컴퓨터분야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쯤되면 빌 게이츠와 그 일당은 건달들이라기 보다는 새 세상을 열려는 도전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2만3,000명의 직원중 35%인 8,000명이 연구직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만큼 시애틀시민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고 이들도 정보화시대를 이끌겠다는 신념에 차있다.

이같은 성공은 빌 게이츠란 이름과 너무도 잘어울린다. 빌 게이츠, 얼마나 돈 냄새 나는 이름인가. 영어로 「Bill」은 청구서를 뜻한다. 항공기 제작회사인 「보잉」하면 비행기가 「부응」하며 떠오르는 것이 연상되듯 그의 이름을 들으면 돈이 떠오른다. 돈을 벌려면 이처럼 이름을 잘지어야 하는가 보다.

젊은 도전자들의 오늘은 자신들의 정열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뒷받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회 깊숙이 그리고 넓게 파고들고 있는 정보화 마인드가 이들의 공상 및 도전정신과 어울려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 MS사란 결과로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꿈을 먹고 사는 젊은 도전자들은 정보화 마인드를 바탕으로 창조적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끝없이 파란 공상을 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지만 우리들에게는 머나먼 이야기다. 난장판인 정치에 밀려 정보화 마인드란 말조차 생소하게 들리는 것이 우리의 쓰라린 현실이다.

한국은 정치가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아당기는 전형적인 국가다. 3류 정치꾼들이 시대를 앞서가는 양 설치고 있다. 이러한 아수라장에선 꿈을 이루려는 도전자들은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다. 멋진 공상을 통해 창조적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괴짜」들이 대우받는 사회가 미래를 여는 정보화사회란 사실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MS사의 성공은 좋은 본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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