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기아인생 ‘불명예 하차’한동안 「한국의 아이아코카」로 한국 재계사에 화려하게 자리매김됐던 기아 김선홍(65) 회장이 끝내 뒷전으로 물러났다. 한국 전문경영인의 상징으로 그동안 정부와 국민들의 따뜻한 관심속에 화려하게 활동해온 그는 끝내 국민과 상당수 기아맨들의 차가운 시선을 뒤로한채 무대를 내려오고 말았다. 40년 기아맨으로서의 김회장은 대표적인 기아인인 것은 물론 한국의 자동차 전문 경영인으로 불리는데 손색이 없다. 80년대초 기아의 위기를 봉고신화로 이겨냈으며 한국 자동차산업 발전사에도 그의 업적은 곳곳에 스며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회장은 한국자동차산업의 산증인 가운데 한명임에 틀림없다.
서울대 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58년 기아산업에 입사해 40년 가까이 기아에서만 일해온 김회장은 엔지니어로서 한국 최초의 일관공정 시스템을 갖춘 종합자동차 공장인 소하리 공장건설을 주도했고 81년부터는 사장을 맡아 오늘날 기아자동차의 골격을 세웠다. 일본의 마쓰다, 미국의 포드와 3각 협력체제를 구축해 프라이드를 탄생시킨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지난 90년엔 전문경영인으로 기아그룹 회장에 취임해 한국 경영사에 새로운 장을 열기도 했다.
기아를 자산기준 재계 8위까지 올려놓고 소유와 경영을 분리시킨 비오너 대기업 그룹을 창조했다는 평까지 듣던 그가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된 것은 올 7월15일 이후다. 기아그룹이 부실로 평가된 이후 100여일이 넘는 기간동안 김회장은 뉴스의 초점이었으나 그에 대한 전문경영인으로의 국민적 애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차갑게 변해갔다.
그는 무리한 사업 확장에 따른 그룹의 부실책임을 면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기아사태 해결을 무리하게 정치적으로 접근했다는 지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아 내부에서조차 김회장의 대응방식에 회의적인 시각들이 지배적이었고 기아를 아끼는 국민들도 등을 돌림으로써 김회장은 29일 한장의 사퇴회견문 낭독과 함께 표연히 사라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이종재 기자>이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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