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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구 ‘할배,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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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구 ‘할배,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

입력
1997.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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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어린시절의 씩씩함/일 교사와 조선말 갈등/당시 민속놀이 등 담아/딸에게 보낸 편지 묶음일제강점기 시절 에피소드 하나. 『5학년이 되자 새 담임선생은 호시노였다. 별명이 도사껭으로 늘 「시나이(목검)」를 들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마구 팼다. 점심시간에, 점심시간이랬자 굶는 아이가 태반이었지만 나와 몇몇 아이들이 화단에서 조선말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창씨개명한 이름이 가와모토란 녀석이 일본말로 「너희들 조선말 썼지」라고 했다. 조선말로 「그래 조선말 했다. 조선놈이 조선말 하지 우짜라 말고!」하고 쏘아주었다. 말싸움 끝에 녀석은 호시노에게 일러바쳤고 호시노는 「이 건방진 놈의 자식, 죽여버리겠다」면서 시나이로 패기 시작했다. 온몸에 불이 났다. 이러다간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본말로 소리쳤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나를 이처럼 때리는가. 이 따위 학교는 그만 두겠다」 그리고 쫓아오는 호시노를 돌아보면서 「이 개자식아, 내가 크면 죽여버릴테다. 기다려라」고 소리치고 내뺐다.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다음날 호시노는 교실을 쓱 한번 둘러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놀란 눈치더니 그만 모르는 체했다. 며칠 지나 가와모토는 내 친구한테 걸려 코피가 터지도록 맞았다. 그뒤 동무들과 조선말을 해도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다』(294∼296쪽).

안재구(64)씨는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에서 1930∼40년대 고향 경남 밀양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를 꿋꿋하게 이겨냈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지혜와 용기와 유머, 빼앗긴 땅에서도 보리싹처럼 푸르게 자라던 아이들의 씩씩한 이야기를 잔잔하게 펼쳐간다. 안씨는 경북대와 숙명여대 수학과 교수를 지냈다. 이 책은 그가 딸에게 보낸 편지를 다듬어 엮은 것이다.

그의 이력과는 전혀 달리 이 책은 「왜놈」 이야기를 하면서도 증오만으로 불타지 않는다. 연날리기 쥐불놀이 자치기같은 민속놀이를 생생하게 그려내는가 하면 잊혀져가는 옛날 이야기를 가득 담았다. 『가을이 되면 새파랗게 푸른 하늘 아래 온 들판이 황금물결이다. 동네 아이들은 논두렁에 나가 벼이삭을 하나 뽑아 메뚜기를 잡아서 등껍데기 밑으로 벼줄기를 밀어넣어 메뚜기를 꿴다. 이렇게 몇 이삭 만들어 집에 가지고 가서 부뚜막의 약한 불을 헤집어내고선 메뚜기를 이삭째 구워먹는다. 바삭바삭하면서 고소하고 맛있다』(68쪽).

청소년에게 권할만하다. 돌베개 발행, 7,500원.<이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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