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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중립의 조건/배종대 고려대 교수·형법(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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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중립의 조건/배종대 고려대 교수·형법(아침을 열며)

입력
1997.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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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검찰에게 중립성은 해묵은 과제에 속한다. 검찰총장이 이번에 비자금수사를 못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과연 독자적인 결정이었을까. 물론 당사자는 국론분열, 경제혼란 등을 우려한 독자적 판단이었고, 어떤 외압도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누구보다도 집권여당의 총재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니 다른 일반 사람들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 의혹이 얼마나 크고 실망 또한 그러하였으면 그 정당을 만든 장본인이고 명예총재인 대통령에게 당을 떠나달라고 공개적으로 선전포고를 하였을까. 이것은 우리 근대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나는 여기에서 이번 검찰의 결정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리고 그 결정에 보이지 않는 손의 영향이 작용했는지, 그 진위를 확인하고 싶은 생각은 더욱 없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심증은 있되 물증을 잡을 수 없는 일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것이란 지극히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짜증스럽기까지 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다시 본심으로 돌아가서 검찰의 수사권, 공소권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행사의 유일한 기준은 법적 정의여야 하고 정치적·경제적 고려가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검찰은 정치집단이 아닐 뿐만 아니라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경제를 구해야 할 임무를 띠고 있는 기관도 아니다. 그것은 정치인, 경제인 나아가서 재경원 등 관련 부처에서 해야 할 일에 속한다. 법적 정의는 오히려 법이 정치나 경제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법에 경제논리가 개입하게 될 경우, 사형수를 종신감옥에 가두어 두면 국가적 비용이 막대하므로 사형 확정판결이 내려지는 대로 빨리 집행해버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웃지 못할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검찰의 중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나라 치고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이룩한 나라는 없다. 그것은 곧 해당 국가의 정치발전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이다. 그리고 검찰의 중립화는 우선은 관습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 오늘날 우리가 봉착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위기의 상당부분은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권력집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도 모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쥐고 있는 불합리한 권력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 뿐만 아니라 검찰권의 중립성보장은 사법권독립의 대전제가 된다. 아무리 사법권이 독립되어 있어도 공소권 행사여부가 검찰의 독자적 결정에 의존하는 기소편의주의와 기소독점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법원이 스스로 심판대상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 그러므로 검찰의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사법권 독립은 반쪽 독립에 지나지 않는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은 검찰인사의 독립으로부터 그 해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인사의 독립은 정치적 중립성이 필요한 모든 국가기관에 해당되는 말이다. 검찰총장에 대한 실질적 임명권은 대통령의 손을 떠나야 하고, 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서 형식적 임명권만 가지면 된다. 검찰총장에 대한 2년의 임기보장으로 검찰의 중립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이 점은 2년 임기제가 도입된 88년 이후에도 검찰에 큰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검찰총장은 검찰의 종착역이 아니라 더 출세하기 위한 중간 기착지쯤으로 여기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총장으로 은퇴하겠다는 사람은 없고 법무부장관이나 국회의원 등 더 출세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니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찰총장에 대한 실질적 임명권의 독립방법은 검찰내부에서 선출하거나 또는 국민이 각 지역의 검찰총수를 선거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연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방법이건 검찰총장을 가장 영광스러운 인생의 마지막 봉사기회로 알고 물러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어떤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검찰을 기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대통령도 후임 총재로부터 탈당을 요구받는 곤혹스러운 지경에 빠지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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