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허리가 잘린지 반세기가 지나면서 북한에 관한 사실들은 바로 이 나라 백성들의 피부에 와 닿는 역사로 인식되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다른 나라의 이야기로 스쳐가기도 한다. 북한의 생수나 흙까지 들여와 음미하려는 백성들의 애절한 속마음을 헤아려 보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통한의 역사를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중압감에 짓눌리게 된다.북한에 관한 기사에 대해 보여주는 애증은 같은 겨레라는 보이지 않는 끈을 거머쥐고 싶어하는 간절함에 기인하고 있다. 북한의 정치와 경제 등이 이 나라 백성들의 인식범위에서 너무 벗어나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이야기로 치부되지만 북한의 역사와 문화가 여전히 우리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은 민족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유용한 분야임이 입증되기 때문이다. 북한과의 보이지 않는 끈은 여기서 출발하며 겨레의 가슴 속에 통일의 염원이라는 일파만파의 격랑을 몰고오기도 한다.
최근 북한 문화재에 관한 언론의 관심이 한껏 부풀고 있다. 북한의 유물이라도 새로운 것이나 소개되지 않은 자료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다는 것은 역사인식이나 교양함양에 여간 도움이 되는게 아니다. 우리가 직접 북한 땅을 답사하여 유적과 유물을 조사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사진이지만 학술가치가 있는 경우 흔쾌히 이용하고 했다. 고구려 벽화유물이라도 평양천도후의 자료는 북한 일원에 산재해 있으므로 북한학계의 자료나 외국인이 찍은 사진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북한의 문화재가 경중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일급유물만은 아니고 옥석을 가리듯 분별해야 될 사안들이 많다. 한반도 전체의 문화유산을 놓고 보면 남쪽이 북쪽을 유물의 질과 양에서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선사유물과 고구려, 발해의 유물은 북에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7·4공동성명이후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고고학·고대사의 문화유산들이 교류되고 유적의 공동조사나 학술대회가 개최되길 갈망해왔다. 선량한 백성들의 처지에서 보아도 정치의 논쟁에서 비켜갈 수 있는 순수한 학술자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겨레의 소망은 물거품이 되었고 공동의 문화유산은 한쪽의 전유물이 되어 마치 딴 나라의 문화재 같은 인식을 심화시켜 갔다. 근자에 고구려 고분벽화를 남북공동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계기가 있는 것으로 보도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연전에 러시아 연해주의 발해유적을 발굴할 때 북한에서 온 발굴팀을 상면하여 많은 상념에 잠긴 적이 있었다. 남북의 학자들은 겨레의 문화유산에 대해 같은 역사인식을 갖고 있으며 특히 발해의 유적·유물에 대해서는 해외의 유적인 경우에 고구려의 계승성을 찾는데 동일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어 협조가 용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공동으로 학술조사가 진행될 기미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문화재가 국내에 소개될 때 학술적인 검토를 거치면서 남쪽의 문화재와 평형감각을 유지해야 공정한 보도가 된다고 믿는다. 단순히 북한의 문화재라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하게 소개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밖의 귀중한 문화재가 홀대를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학술정보의 진원이 일본이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그 쪽에 기우는 학문자세도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출판사의 판매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소련붕괴후에 러시아와 중국의 자료를 우리가 자유롭게 활용하기 때문에 우리의 학술활동이 크게 신장된 것을 감안하면 북한의 자료를 어떤 위치에서 취급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깊은 성찰을 요하는 문제이다. 안악3호분이나 약수리고분의 벽화 등은 오래전에 알려진 내용인데 마치 근자에 처음 알려진 것처럼 오도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는 값싼 낭만주의가 도처에 자리잡고 있어 쉽게 감정에 휘말리는 약점이 있다. 북한의 문화재 가운데 우리가 마땅히 알 가치가 있는 것은 당당히 백성들한테 알려야 역사의 안목을 높이는데 기여를 하게 된다. 만에 하나 북한의 문화재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마구 소개할 경우 경박한 낭만주의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얕은 감성은 항상 이성을 짓밟을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한국사>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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