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서 명함을 받아 연락처를 수첩에 옮겨 적으려다 잠시 당혹감에 빠졌다. 전화번호가 너무 많았다. 직장과 집의 전화번호, 두 곳의 팩스 번호, 휴대폰과 삐삐 번호, E―mail 주소까지 7개였다. 명함은 마치 주인이 정보통신시대의 총아인 양 자랑하는 것만 같았다. 삐삐밖에 없는 나는 아는 사람들이 『언제 한 잔 합시다』며 휴대폰 번호를 물을 때면 부끄러워진다. 나만 구닥다리 세대인 것 같고, 휴대폰 하나 없는 주제로 보이는 것 같다.1일부터 개인휴대통신(PCS)이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연말까지 이동전화 가입자가 70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세계 10위의 「이통대국」(500여만명)이다. 길을 걷다 보면 정말로 휴대폰 안 갖고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노점상(사실 이런 사람에게 제일 필요할 지 모르지만)부터 운전자 주부 대학생까지 온통 귀에다 전화기를 붙이고 다닌다. 지하철 버스 음식점 목욕탕 심지어 사무실 안에서도, 도처에서 『비리릭』 『여보세요』다. TV는 종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를 외친다.
진짜 우리는 그렇게도 할 말이 많고, 우리 사회는 그토록 연락을 주고 받을 일이 많은 것일까? 외국에 살다 온 사람들이 처음 놀라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휴대폰 홍수라고 한다. 아내도 자꾸 휴대폰을 사자고 조른다. 그러나 목적은 뻔하다. 밤 늦게까지 술 못마시게 하고 혹시 딴 짓하지 않나 감시하려는 불순한(?) 의도일 터이다.
이동전화를 끊었더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며 좋아한 친구가 있다. 휴대폰 때문에 예정에 없던 일이 자꾸 생기고, 모르고 지나갔어도 될 일에 끼어들게 되고, 사생활이 노출되고, 은밀한 유혹에 빠지게 되고, 꺼 놓으면 불안해지고, 잃어버릴까 신경이 써지고, 생활의 질서가 깨지더라는 것이다.
이동전화의 폭증을 우리의 편의주의, 조급한 심성, 과시욕으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실용성이 언제나 최고의 가치일까? 고궁에서 산책하며 휴대폰에 대고 떠드는 사람. 이 가을 단 하루라도 문명이라는 이름의 속박으로부터 탈출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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