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토론 상대 상처내기 주력/타인 인격 존중 ‘공정한 룰’부터국내에서도 상영된 적이 있는 「크루서블(The Crucible)」이라는 영화는 1620년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세일럼에서 있었던 「마녀재판」의 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인간성과 재판이라는 문제를 생각하면서 여러번 이곳을 찾은 나에게는 신비한 마법의 세계나 검은 뾰족모자에 빗자루를 타고 지붕 위를 나는 마녀모습 같은 것들은 물론 미국 법제도의 발전이라는 영화주제조차 흥미로운 것이 되지 못했다.
구한말 유길준 선생의 유품이 소장되어 있는 피바디·에섹스박물관의 마녀재판기록을 보면서 왠지 『이 지구상에서 지금도 마녀재판이 있을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정작 마녀사냥과 마녀재판을 저지른 서구인들에게는 아득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야기인데도 해방이후 지금까지 한국에는 「인민재판」 「빨갱이」 「용공분자」라는 딱지로 숱한 마녀사냥과 마녀재판이 있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녀사냥은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어떤 사람을 희생양으로 모는 것이고 마녀재판은 이런 마녀사냥의 최종적인 의식으로, 재판이라는 도구를 동원하여 벼랑 끝에 몰린 자를 처단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인간의 이성과 예지는 죽어있고 합리성이나 객관성은 숨을 쉬지 못한다. 자기만의 확신과 편견 속의 걱정이 온판을 휩쓸고 온갖 모략과 음흉한 계략이 다중의 어리석음 가운데서 판을 친다.
여기서 새삼스레 마녀사냥을 거론하는 것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각종 토론을 보면서 불현듯 세일럼에서의 생각이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토론은 서로가 상대의 인격과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공정한 룰을 지키면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자기의 생각에 동의하도록 하는 전략이 깔려 있지만 여기에는 언제나 기본권 주체로서의 상대의 존재와 설득력 획득의 합리적인 절차가 전제로 되어있다.
그런데 대선후보들의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고 선거분위기가 고조되어 가면서 토론이라는 이름 하에 이상한 양상과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처음에는 정책을 그럴싸하게 내놓다가 결국 서로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상대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인신공격을 하고 비난하며 상처내기에 바쁜 것 같다.
이는 TV토론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질문을 빙자하여 특정인을 공격한다든지, 끊임없이 「용공」이라는 말을 꺼내 상대방에게 억지로 색깔을 씌우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마녀사냥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 잡지가 주최한 「사상검증」토론회와 같은 것은 토론문화를 저해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지구상 어디에도 없는 사상검증이라는 것이 왜 갑자기 등장하였는지, 그리고 이 잡지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스럽거니와 이런 행사가 이미 특정인이나 특정단체를 흠집내기 위해 지목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도 갖게 된다. 질문의 형식을 들어 질문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여러단체를 싸잡아 용공단체로 매도한 것은 토론 이전에 실정법이 보호하고 있는 타인의 명예와 권리를 침해한 것이 된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은 흑백논리가 판치는 우리의 문화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토론은 다양한 가치와 열린 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흑백논리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풍토에는 발붙이기 어렵다. 대선후보들은 그렇다 치고 토론에 참가하는 사람들조차 문제가 없지 않다. 유도질문을 하거나 상대를 윽박지르는 것도 원래의 토론과는 거리가 멀고, 상대의 약점을 들추어 핀잔을 주거나 질문을 빙자하여 다른 목적을 꾀하는 것은 토론을 망칠 뿐 아니라 나아가 법이 허용하지 않는 행위까지 저지르는 것이 된다.
토론은 표현의 자유에 의해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의 자유로 어떤 말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토론이든 논쟁이든 법이 보호하고 있는 상대의 자유와 권리는 어떤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다.
오늘부터 또 TV에서 대선후보들의 토론회가 열린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상대의 인격과 권리와 존재가치는 나의 것과 동등하다는 점이다. 이것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토론이전에 실정법상의 책임을 질 일이 먼저 생긴다. 토론에서도 자기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내에서만 누릴 수 있다는 법리가 적용된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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