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산망을 이용해 전화 한 통화로 금전거래를 하는 편리한 신용사회 정보화사회에 살고 있다. 위험부담이 큰 현금뭉치를 만지지 않고도 웬만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역이나 극장에 가지 않고도 표를 손에 넣을 수 있는 편리함은 첨단문명 시대의 혜택이라 할 것이다.그러나 훌륭한 문명의 이기도 악용하면 심각한 재앙을 초래하듯 신용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신용」의 질서가 무너지면 우리는 모두 발가벗은 임금님 같은 신세가 되고 만다. 서울지검이 적발한 신용카드 위조단사건은 현금이나 똑같은 신용카드가 얼마나 허술한 것이며, 신상정보의 유출이 어떤 재앙을 가져다 주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위조단은 빚에 허덕이는 신용카드 거래승인 조회업체 직원을 유혹해 카드 소지자의 신상정보를 1만6,000여명 분이나 입수했다. 그것으로 1,000여장의 위조카드를 만들어 신용도가 높은 211장으로 5억7,000여만원 상당의 현금을 손에 넣었다. 한 사람에게 200만원이 훨씬 넘는 피해를 안겨준 셈이다.
검찰에 따르면 정보만 있으면 전자상가 등에서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기기를 이용해 얼마든지 카드위조가 가능하다 한다. 카드위조가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개인정보의 유출방지를 위한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전기통신사업법에 카드거래 승인 조회업체가 부가통신사업자로 규정돼 신고만으로 설립이 가능하다니 개인정보 관리가 이렇게 허술할 수가 있는가. 거래조회를 별도의 업체에 맡긴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카드가입자들에게는 국가의 감독 아래 있는 금융기관의 신용이 담보인데 신고만으로 설립이 가능한 이름 모를 업체에 조회업무를 위임했다면 신용 포기나 다름 없다.
범인들은 신상정보를 카드위조에 사용해 정보를 도둑맞은 사람들은 경제적인 피해에 국한됐으나 만일 자료가 강력범들에게 넘어가 납치 유괴나 공갈같은 범죄에 이용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실제로 개인정보 자료 판매업자들은 주로 신용카드 조회업체들에서 자료를 입수하고 있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말이다. 여기에 불법유출된 인터넷 휴대폰 등 갖가지 통신기기 이용자 자료와 일부 국가기관에서 유출된 개인정보들까지 횡행하고 있으니 우리는 벌써 발가벗겨진 것이나 다름 없을지도 모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관과 정부는 관련제도와 법령의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불특정 다수의 재산과 목숨까지 담보돼 있는 개인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정보화시대를 이끌어갈 사명감과 직업윤리로 정보문화를 창달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첨단문명의 혜택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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