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호텔은 강남 한 복판에 있고, 사는 곳도 그 근처라 어쩌다 강북으로 가는 날은 늘 새로운 모험에 나서는 기분이 든다. 나는 얼마전 강북의 유명한 한식당으로 초청을 받았다. 한국 친구 6명과 함께 일행은 두차로 나누어 타고 다리를 건넜다. 앞장서 길을 안내한 차는 미스터 박의 그랜저였고 내가 탄 미스터 김의 소형차가 그 뒤를 따랐다.음식점에 도착하자 주차할 곳이 없었다. 앞 차의 미스터 박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는 우리차에 신호를 보냈다. 미스터 김은 그곳이 견인지역임을 알고 다른 곳에 세우자고 했으나 미스터 박은 전에도 주차한 적이 있다며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미스터 김은 몇바퀴 돈 끝에 안전지역에 차를 세웠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대접받은 후 가까운 노래방에서 2차를 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미스터 박의 차가 보이지 않았고 그 자리에 대신 포장마차가 들어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두 황당해하는 중에 미스터 김이 입을 열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여기는 견인지역이라고 했지?』
미스터 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일대를 뒤지며 자기 차를 찾아 헤맸다. 나는 혹시 미스터 박의 차가 포장마차로 변한 것이 아닐까 의심했으나 일행은 내 말에 한바탕 웃을 뿐이었다. 주변의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곳은 견인지역이라 요즘 단속이 심해져 분명히 경찰이 끌고 갔을 것이며 주차료와 견인료 합쳐 한 20만원은 들 것이라고 했다. 미스터 김은 『남의 말 안 듣다 그렇게 됐다』고 꼬집으며 『이왕 이렇게 된 거 잊어버리고 노래방에 가서 기분이나 풀자』고 제의했다.
노래방에서도 미스터 박의 약올리기는 계속되었다. 『포장마차를 거두면 그 속에서 그랜저가 나올 것이다. 하하하…』
노래방에서 나왔을때 포장마차는 사라졌으나 그 자리에 그랜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일단 미스터 김의 작은 차를 같이 타고 가다가 헤어지기로 했다. 술냄새, 마늘냄새에 절은 7명의 남자가 좁은 공간에 구겨 넣어졌다.
미스터 김이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이다가 갑자기 멈추었다. 『혹시 저 앞에 있는 것 자네 차 아냐? 번호가 8574야』 『그래 맞아』 『어떻게 된거지?』 『아니 경찰이 차를 견인해다가 이곳에 갖다 놓았나?』
우리는 모두 차에서 내려 그랜저를 둘러보며 살폈다. 그 차는 불법주차 딱지도 붙어 있지 않았고 견인된 흔적도 없었다. 아주 멀쩡했다. 천사가 내려와 기적을 행했나? 우리는 깜깜한 밤 하늘을 올려다 보며 잠시 엄숙할 수 밖에. 자기 차로 옮겨 탄 미스터 박에게 미스터 김이 마지막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다음부터는 조심해. 그러다 큰일 난다구』
그런데 미스터 박이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실은 말이야. 내가 아까 식사중 잠시 빠져 나와 차를 여기로 옮겨 놓았지. 한번 놀려봤는데 다들 잘들 넘어가더군. 어쨌든 즐거운 밤이었어. 안녕, 내일 보자구…』<르네상스 서울호텔 식음료이사·스페인인>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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