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NO”라고 말할 권리조차 없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NO”라고 말할 권리조차 없다

입력
1997.10.19 00:00
0 0

◎어린이날·아동복지법 등 법적 권리보장 명문화 불구 실제 세부규정 미비와 “내자식”이란 사회통념이 ‘인권선진국’ 가로막아우리나라는 대만, 일본과 더불어 어린이날을 법정 기념일로 두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나라. 그러나 아동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제반 법적·제도적 장치와 시행 의지를 놓고 보면 어린이날의 존재가 무색해진다. 우리는 「아동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여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아동인권 확립의 기둥인 아동학대 예방과 방지에 관한 법령은 선언적 의미 이상을 뛰어넘지 못한다.

법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동의 건전한 육성과 그 복지를 보장함」을 목적으로 한 아동복지법 외에도 청소년기본법, 소년법, 모자보건법, 영유아보육법 등의 아동복리법, 민법, 형법, 근로기준법 상의 아동 관련조항 등이 아동의 제반 권리보장을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령들이 아동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아동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항에 관해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하고 표명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아동 의사표명권의 경우를 보자. 현행법은 부모의 이혼시 친권행사자 지정과 변경, 양육에 관한 처분과 변경 등의 사항에 대해 심판할 때 아동 본인의 의견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는 가사소송규칙 제100조를 두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15세 이상에 한정해서다. 이때문에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면 학대받을 게 뻔한 상황에서도 부모가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돌려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수도 없이 발생한다』고 아동상담 관계자들은 어려움을 토로한다.

아동학대행위를 금지하는 별도의 직접 규정을 두고 있는 아동복지법. 아동학대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징역과 벌금형까지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아동학대행위에 대한 신고와 고발 의무, 의무 불이행시의 벌칙 등에 관한 세부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신고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신고해도 유야무야되기 일쑤다.

따라서 극심한 아동학대 등 아동의 이해에 상반되는 행위에 대한 소송이나 아동의 장래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친권상실선고과정 등에서 이해당사자인 아동의 의견이 충분히 개진되고 청취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아동학대 신고의무제 등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다. 때마침 이번 정기국회에 신고의무제 규정 등을 신설한 아동학대방지법안이 제출되고, 보건복지부도 아동복지법의 전면적인 보수를 서두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제반 법적·제도적 장치의 확충도 중요하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사실상 더욱 절실하다는게 아동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훈육의 한 방편으로 체벌을 당연시하고, 학대행위를 제지하면 오히려 『내 자식 일에 당신이 왜 나서느냐』며 발끈하는 어른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아동인권 선진국의 길은 험난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아동학대에 관한 한 법 탓, 제도 탓만 할 수는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황동일 기자>

◎선언뿐인 법 재정비 나섰다/학대처벌 강화·선도교육 등 삽입/국회제출… 이르면 내년 1월 시행

실효성이 적다는 비판을 받아온 아동학대 방지법안이 강화될 전망이다.

신한국당 정의화 의원은 아동학대와 관련한 각계의 여론을 수렴, 확대개정한 아동학대 방지법안을 의원발의 형식으로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했다. 정의원은 『성적학대를 포함한 신체적, 정신적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고 건전한 아동의 육성을 꾀하기 위해 법안을 마련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현행 아동학대의 예방 근거는 아동복지법 제18조의 「자신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아동을 학대해서는 안된다」라는 규정 뿐이라 아동학대의 범위지정과 학대자의 처벌 문제에서 법의 잣대를 적용하기가 매우 모호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서는 학대자의 처벌기준을 강화하고 세분화했을 뿐 아니라 학대자의 선도와 교육부분도 삽입해 학대받는 아동의 실질적인 이익을 위한 법안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개정안은 학대의 범위를 ▲아동의 신체적·정신적 손상 ▲형법 및 성폭력범죄 처벌법에서 규정하는 아동범죄 ▲아동의 노동력 착취 및 의식주 등 기본적 보호 방치 등으로 세분화 했다. 아동의 범위는 만 18세미만으로 정했다.

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학대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전화 설치와 학대아동의 발견, 치료, 보호 등을 전담할 전문아동보호기관을 신설하거나 기존의 아동상담소나 아동복지시설 등을 전문 보호기관으로 지정토록 규정했다. 이밖에 전담 경찰제를 도입해 아동학대의 신고접수에서 격리, 보호 및 전문기관의 인도까지 책임지도록 했다.

학대행위자의 처벌은 더욱 엄격해졌다. 학대의 경중을 가려 아동에 대한 3개월 이하의 접근금지 명령이나 3년 이하의 보호·양육·교육금지 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 경미한 사안의 경우 1년 이하의 사회봉사 명령이나 일정기간 학대아동을 전문아동보호기관에 위탁하는 인도명령에 해당된다. 사회복지기관 종사자가 학대자와 아동의 공동생활을 100시간 이하 관찰한 뒤 적합판정을 내리는 관찰명령도 있다. 만일 학대자가 보호처분의 확정 후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이밖에 교육 의료 등 기본적인 보호의무를 하지않고 장기간 방임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하는 아동방임죄도 추가됐다. 개정안은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전망이다.<염영남 기자>

◎외국의 아동보호/학대 신고안하면 불고지죄 처벌

지난 7월 테레사 수녀와 달라이라마, 아웅산 수지, 야세르아라파트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 20명은 아동학대 추방을 촉구하는 「세계 어린이들을 위하여」라는 성명서를 유엔 회원국 원수들 앞으로 보냈다. 이들은 『폭력이 가정 학교 거리에서 신체적·심리적 측면 등 여러 형태로 아동을 괴롭히고 있다』며 『2000∼2010년을 비폭력 10년기간, 2000년을 비폭력 교육의 해로 선포하자』고 제의했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거주했던 한국 부모들은 아이들을 혼자 집안에 두고 외출하거나 신체적 체벌 등을 가하다가 신고를 당하거나 봉변을 당한 경험을 한 두번 갖고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를 혼자 등·하교시킬 수도 없다. 자신이 할 수 없으면 대리인을 지정해 등·하교때 동행시켜야 한다.

선진국의 아동 보호는 법이나 제도, 사회적 인식 등에서 우리보다 한 차원이 높다. 정부나 민간단체의 아동학대 추방 활동도 활발하다. 미국 호주 캐나다 등 14개국은 아동학대에 대한 강제의무신고제도를 채택, 목격자의 신고 불이행에 대해 불고지죄를 적용하고 있다. 유럽국가는 대부분 정부직속기관으로 신고·보호기관을 두고 학대아동의 격리나 학대부모의 교육 등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제도적 장치가 가장 탄탄한 나라는 아동학대로 인해 연간 2,0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미국. 1874년 최초의 아동학대 예방협회가 뉴욕에서 조직된 이래 60년대에는 각 주마다 아동학대 방지법을 제정했다. 70년대 들어서는 아동복지에 유해하다는 모든 형태의 행위를 아동학대로 확대 규정해 학대자에 대한 엄한 처벌을 가하고 있다. 이밖에도 34개주가 학대 관련 긴급전화를 24시간 운영하고 45개주는 중앙등록제를 도입해 주 전체의 아동학대를 총괄적으로 관리 점검한다. 정부기관 외에는 아동관련 160여개의 각종 협회가 성적·신체적·정신적 학대와 방임, 노동착취 등의 치료서비스 및 상담업무를 맡고 있다.

일부 아시아 국가들의 아동학대 방지제도도 우리 보다는 앞서 있는 수준이다. 일본은 「아동학대 예방 및 치료법령」을 두어 정부차원에서 아동학대 예방에 주력하고 있다. 대만은 88년부터 아동학대신고센터를 설치하고 긴급전화를 상시 운영한다. 법률가 사회사업가 등 사회지도층이 지도위원으로 참여하며 상담업무는 40시간 이상의 전문 교육을 이수해야 허용된다. 말레이시아는 사회복지부내에 정신과 의사, 교육자, 경찰관, 심리학자, 법률가로 구성된 아동학대위원회를 두고 범 정부 차원에서 아동학대에 대처하고 있다.<염영남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