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산수화·현대화·판화·인물화·만화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오늘날 중국화단 이끄는 거장 4명의 작품 100여점이 서울나들이/20∼29일 한국일보사 1층 갤러리세계미술사의 큰 줄기를 이뤄온 중국미술이 혁명이후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왔을까. 발전일까 후퇴일까. 80년대 개방화 물결을 타고 중국미술이 간헐적으로 외부에 소개되면서 세계는 중국화단의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다시 주목하고 있다.
한국일보사가 중국 인민일보사와 공동으로 20일부터 29일까지 본사 본관 1층 갤러리에서 개최하는 「중국원로화가 초대전」은 바로 중국미술의 전통과 오늘의 모습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본격 소개하는 자리이다.
중국미술의 내밀한 속살을 전통산수화, 현대화, 판화, 인물화, 만화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보여줄 이 전시회는 19세기까지 동양화의 영역에서 예술적 교감을 이뤄온 양국 전통화의 변화를 비교할 기회이기도 하다.
초대작가 옌한(언함·81·국립항저우(항주)대 교수), 야오유둬(요유다·60·중앙미술학원 교수), 팡청(방성·79·정저우(정주)대 신문학과 교수), 위원저우(우문주·57·중국화가) 등 4명은 중국화단을 주도하는 거장으로 꼽힌다. 출품작은 100여점에 달한다.
옌한(언함)씨는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활발한 작업을 하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 원로화가. 1935년 국립 항저우(항주)예술전문대에서 수묵으로 화조도와 산수 기법을 수업한 뒤 39년 루쉰(노신)대학에 진학했다. 당대의 혁명열기를 예술로 담아내기 위해 그는 판화 등 인쇄예술을 선택했다. 루쉰대학의 판화그룹에 가입, 목판을 다루는 기법을 익힌다. 중국전통의 소재를 차용,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판화작업에 열정을 지녔던 그는 80년대말까지 일상의 소재를 통한 전통미학의 복원을 꿈꾸었다. 하지만 그가 최근들어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된 장르는 중국 전통산수. 화선지와 먹의 자유로운 운용을 토대로 그는 대륙의 산하를 웅장하고 호방한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
먹과 붓을 연필다루듯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중국작가들의 재료운용은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옌한의 전통화는 물의 맛이 지나쳐 품격을 해치는 전통화의 함정을 극복했다.
그는 80년대 후반부터는 판화의 표현적 기법을 전통화에 차용, 추상적 분위기가 강한 작업까지 선보이고 있다. 이제 노 대가의 손끝에서는 실경산수와 판화, 전통화와 추상화라는 이질적 기법이 변증법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다. 그가 91년 중국 미술가협회 중국판화가협회에서 「걸출공헌상」을 수상한 것은 바로 이같은 성과에 대한 작은 답례인 셈이다.
소묘채색기법으로 인물화를 그리는 야오유둬(요유다)씨는 왕딩창(왕정창) 전 싱가포르 총리,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전 일본총리 등 아시아 각국 지도자의 초상화를 그린 인물화의 고수로 평가된다. 37년 저장(절강)성에서 출생한 그는 54년 중국 중앙미술학원 중국화과에 입학, 예치엔위(엽천예), 장자오허(장조화), 리커란(이가염), 리쿠산(이고선) 등을 사사했고, 63년 중국미전에 입선하면서 중앙무대에 등장했다. 5년마다 열리는 중국미전은 화가로서의 입신을 꿈꾸는 젊은 작가들에겐 일종의 등용문이다. 야오유둬는 66년 아프리카의 기니에서 「아프리카의 각성(비주적각성)」을 제작하면서 해외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야오유둬의 인물화의 특징은 인물의 독특한 기운에 맞추어 색과 필치를 달리 한다는 것. 인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를 표현하는 우리의 전통 인물화 처럼 그 역시 대상이 갖고 있는 성격의 골격만을 골라 자유로운 운필로 대상을 묘사한다. 중국 인민군의 활동상을 담은 정치성 띤 작품도 있지만 그의 휴머니즘적 개성은 촌부와 촌로를 그린 인물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말을 잘 고르기로 이름난 백락의 일화를 차용한 「백락이 말을 고르다」, 노승의 수도장면을 잡은 「참선도」같은 작품은 인물화의 다양한 변용을 말해준다.
홍콩일간지 「대공보」, 인민일보, 북경일보에 만화를 연재하고 미술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팡청은 시사만화와 삽화를 통해 중국의 시각으로 대외 정치현실을 비판한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고전 「삼국지」의 일화를 그린 「장비, 고기를 팔다」, 인간적 면모가 물씬 우러나오는 파계승 시리즈 등. 중국적 정취가 배인 만화의 세계는 전시의 감칠 맛을 더해준다.
이미 한국을 비롯, 일본 말레이시아 미국 캐나다 등 각국에서 여러 차례 전시를 가진 바 있는 위원저우(우문주)는 80년대 「청록산수」를 통해 현대 중국화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옌한의 전통화가 대담한 필치와 호방함을 자랑한다면 위원저우의 그림은 흐벅진 물맛과 화려한 색감으로 전통화의 현대적 변용을 가늠하게 해준다. 웅장한 중국 산하보다는 밥짓는 새벽의 풍경 같은 일상적 소재를 푸른색 계열의 작품으로 상징화한 작품이 주조를 이룬다.<박은주 기자>박은주>
◎중국 원로화가 초대전에 부쳐/박영택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동양적인 것의 복원을 기대
한국일보사와 중국 인민일보사가 한·중 수교 5주년을 기념하고 양국의 교류증진을 위해 중국 원로작가 4인 초대전을 연다.
해방 이후 우리의 문화수용은 오랜 관계를 유지해온 중국, 일본과의 단절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문화와의 접속으로 요약할 수 있다. 동양화는 고루한 전통의 답습이나 서구식 화풍을 수용, 번안하는 수준의 추상으로 몰려가거나 아니면 그 둘이 혼재된 상황에서 단지, 재료적 수준에서만 동양화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형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삼 중국작가들과의 교류, 미술문화의 접촉은 많은 의미를 지니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고 다원주의가 숭상되는 상황에서 그동안 타자화했던 것들이 복원되면서 오리엔탈리즘 내지 동양적인 것, 혹은 한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고 그 실체나 성격에 대한 논의와 모색이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중국과 한국은 교류의 공백으로 서로 상당히 다른 미술문화를 지닐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미술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도출되는 공동의 과제를 함께 모색하는 것 또한 이번 전시회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는 원로작가들에 국한하고 있지만 다양한 작가, 저마다의 성향과 기법이 독특한 작가들을 초대한 전시라는 인상을 받는다. 전통 중국의 화풍을 뛰어난 기량으로 보여주는가 하면 사회주의 리얼리즘 기법이 동양화와 만나 이루어지는 회화적 양식, 압축되고 간결한 선묘와 구성을 통해 만화와 포스터의 뛰어난 성과를 가시화하는 작품 등이 함께 섞여 있다.
먹과 종이를 통해 그 오랜 시간을 갈고 닦아온 전통이 현재 중국인의 가슴과 손목에서 여전히 살아나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 그림에 대한 생각의 변모와 상이함을 깨닫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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