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운동이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정국에서 벗어나 정책대결중심으로 전개되나 싶더니 어느새 비자금 정국의 늪속으로 빠져들었다. 21세기를 바로 앞둔 이 시점에서 치러지는 대통령선거가 앞으로 한국이 선택해야 할 비전에 대한 여야 경쟁이 아니라 후보들의 과거에 대한 비난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대검찰청에 대한 국회의 국정감사만 하더라도 국정감사라기 보다는 여야간의 비난경쟁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여야의 대통령후보들이 서로의 과거를 들추어내 비난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운동에는 후보들이 상호간 과거를 검증하는 절차도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만 하더라도 선거때 제기된 여자문제와 선거자금문제로 지금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후보들도 떳떳지 못한 과거는 마땅히 비난 받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국민이 우려하고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의 대통령선거운동이 다음과 같은 점에서 선진 민주국가의 대통령 선거운동과는 다르게 파행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첫째로 선진민주국가에서는 대통령후보들이 상호간 과거를 비난하는 부정적 선거운동도 하지만 그것이 선거운동의 중심이 되지는 못한다. 그것은 여야후보 모두가 오늘의 위기를 해결하고 내일의 비전을 제시하는 긍정적 선거운동을 하지않고 상대를 비난하는 부정적 선거운동으로 일관한다면 당선될 가능성을 오히려 잃기 때문이다. 선진 민주국가의 선거운동은 항상 정책대결중심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운동에는 여야간의 정책대결이 없다. 지난 몇년간 나라가 엉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치는 방법에 대한 여야간의 대결이 없다. 세기가 바뀌고 인류의 역사발전단계가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의 대처방법에 대해 여야간 대결이 없다. 국제질서가 냉전시대와는 질적으로 다르게 이미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둘러싼 여야간의 대결이 없다. 각 정당의 대통령후보 경선이후 선거운동의 주요 이슈로 이회창 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과거에 대한 서로간의 비난 이외에는 뚜렷이 부각된 것이 없다.
둘째로 우리의 경우 여야 후보들의 과거에 대한 비난정도가 선진 민주국가의 선거운동과 비교해 너무 격렬하다. 서로 간에 대한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누구 같은 사람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극한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국회 법사위원회의 국정감사 장면만 해도 의원들이 고함을 지르는 등 꼴불견이었다.
대통령 선거운동이 정책대결 중심으로 되지 않고 병역문제나 비자금 문제같은 것으로 서로의 인신을 공격하는 공격전이 되다보니 여야 간의 대립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결이 아니고 감정적인 이전투구로 전락하고 있다.
선진민주국가의 여야관계는 상대방을 죽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적대관계가 아니다. 여야관계는 운동시합에서의 경쟁관계와 똑 같다. 여야는 서로 간 정치적 경쟁의 상대방이지 적이 아닌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전에서의 여야를 보면 원수지간 같아 보인다. 여야가 서로를 원수지간으로 생각한다면 민주정치는 정착하기 어렵다. 서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선진 민주국가의 대통령 선거전에서는 여야가 법 앞에 평등하다. 여당 후보나 야당 후보에게나 법은 평등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지난 반세기 동안 법이 여야에 평등하지 못했다. 여당 후보들의 범법사실은 묵인해주고 야당후보들의 범법행위는 엄격하게 수사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법은 여야에 대해 불평등하게 적용되었던 것이다.
이번에 여당의 강삼재 총장이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문제를 폭로하고 검찰에 수사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일간지 조사에 의하면 김후보의 지지율은 35.8%로 약간 올라간 반면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17.7%로 6.2%나 떨어진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일반 국민이 정치인들의 비자금조성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제기한 측의 지지율이 오히려 하락하는 것은 법의 불평등 적용문제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두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는 모두 국민을 존중하는 자세로 선거운동의 정도를 걸어야 할 것이다. 여야 모두 이번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국가 안정도를 높여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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